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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중앙시장의 과거와 현재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T09004
한자 中央洞-中央市場의 過去와 現在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
시대 현대/현대

[중앙시장의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의 장시는 15세기 후반 전라도지방에서 처음 성립된 후 16세기에 전국적인 개설을 보게 되었고, 17세기 중엽 이후 수적인 면에서 크게 증가하였다. 당시 대동법의 실시와 동전 유통의 확대, 농업의 상품작물 재배 증가 등과 함께 장시의 개설지역도 교통의 요지나 물화집산지가 아닌 외진 곳까지도 확대되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장시가 5일장화 되면서 각 지방에서는 농민들이 농업생산물과 함께 가내수공업품을 상품화하여 교역품으로 내놓았고, 상업성이 높은 특수작물의 재배와 교역이 크게 증가하면서 우리나라의 유통경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장시는 기본적으로 상품의 유통을 위한 장소이지만, 정보의 교환 및 수집, 정령(政令)의 홍보의 장이 되기도 하였고, 오락과 유희의 장소로 사람들이 모이고 안집하는 장소로도 널리 활용되었다.

중앙시장의 역사 : 현재의 진주 중앙시장은 조선시대의 지방장시가 지금까지 남아 전해지는 시장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중앙시장을 읍장(邑場) 혹은 주내장(州內場)으로 불렸다. 당시 진주목 관할에는 읍장을 비롯하여 반성장(班城場)·소촌장(召村場)·영현장(永縣場)·엄정장(嚴亭場)·만가장(萬家場)·사일장(四日場)·수곡장(水谷場)·대야천장(大也川場)·문암장(文巖場)·덕산장(德山場)·북창장(北倉場)·문한장(文磵場) 등이 있었지만 진주장은 경상도 서부의 농산물과 남해안의 해산물도 거래될 정도로 서부 경상남도의 상업 요충지의 하나였다.

한편, 진주장은 조선시대에 사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영조 6년 4월 1일의 기사에 보면, 당시 경상도감사였던 박문수가 올린 장계에 거창(居昌)의 역당(逆黨)을 경상도우병사에게 명령하여 진주시장에서 참수하고 그 머리를 시장에 효수하여 시장에 운집한 모든 사람들의 경각심을 갖도록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진주장은 본래 1884년(고종 21)에 결성된 진주상무사(晋州商務社)로 발족되었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공설시장이 되어 매 2일과 7일에 개장되는 5일장에서 매일 장이 서는 매일장이 되었다. 1939년 일본인들에 의해 명칭이 진주시장진흥회로 개칭되었다가 1945년 해방 이후 중앙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66년 1월에는 대화재로 시장의 점포가 모두 불에 타버렸고, 이후 재건과정에서 현재 남아 있는 점포의 대부분이 지어졌다. 1967년에는 중앙시장 상인들이 33% 부담금으로 진주중앙공설시장으로 발족하였고, 1970년에 민영화 시장법인인 중앙시장번영회를 출범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영화가 되기 이전까지는 진주공설시장으로 모든 시장부지가 시 소유로 되어 있었으나 1971년부터 시장 부지를 개인에게 팔았다.

진주상무사는 현재 옥봉동에 건물과 함께 「사전청금록(四廛靑衿錄)」·「사전권조문(四廛勸助文)」 등을 비롯한 상무사 관련 문서와 각종 인장(印章) 등을 보관하고 있다. 당시 서부 경상남도 일대에는 이 인장과 문서가 없으면 상업행위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시장 구역도 지금의 대안동 일대만이 아니라 동성동옥봉동 일대까지 확대되었다.

중앙시장의 현재 모습 : 중앙시장번영회에서 관리하는 중앙시장대안동 8번지 일대로 5,083평의 대지에 1천여 개의 점포로 구성되어 있다. 각 점포는 하나당 평균 3평 3홉의 크기인데, 한 사람이 반드시 하나의 점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2개나 3개의 점포를 붙여서 장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번영회에서는 8번지의 상가지역만 관리를 하고 있지만 이 상가 주변으로 노점들이 성행하면서 대안동·장개동·수정동 주변으로 중앙시장이 확대되어 외부에서 볼 때 중앙시장은 약 3만여 평의 규모로 여겨지고 있다.

중앙시장은 크게 1구·2구·3구 등 3개의 구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1구 지역은 본래 미곡시장과 마포시장이 있었던 곳이었지만, 현재 미곡시장 자리에는 주차장 시설이 들어서 있다. 2구 지역은 포목점과 과자전이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과자전은 도매시장으로 매우 크게 형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소멸되고 몇 개의 점포만이 남아 있다. 포목점이나 주단가게들 중에는 옷가게·한복가게 등으로 바뀐 점포도 많다. 3구 지역은 채소공판장이 있었으나 채소공판장이 다른 동으로 옮겨가면서 그 자리에 현재는 먹자골목과 활어시장이 대신 자리 잡았다.

중앙시장은 새벽시장과 상설시장이 있는데, 번영회 회원은 점포를 지닌 상설시장의 상인들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 새벽시장에는 야채와 생선시장이 새벽 2시부터 이루어지고 생어시장에서는 경매가 이루어지는데, 번영회에 소속된 사람들이 경매를 한다. 경매는 산지에 직접 가서 물품을 구입한 진주시장의 10여명의 도매상들이 활어를 사가지고 와서 경매를 통해 소매상에게 판다. 농수산물 거래는 새벽부터 10시 정도까지 거래가 이루어지고, 대개 그 이후에 상설시장의 상가들이 문을 연다. 새벽시장은 새벽 5시에서 6시 정도가 가장 바쁘고 상가점포는 2시 이후가 가장 바쁘고 손님이 많다.

○ 번영회 운영 : 번영회 조직은 회장, 이사진, 대의원,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회원들의 직접선거로 이루어지는데 현재 32대 회장이 재임하고 있다. 회원은 600여명 정도이며, 회비는 가게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낸다. 관리비는 점포를 소득에 따라 갑, 을, 병, 정으로 나누어 거두는데, 갑과 을 지역은 1층으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점포들로, 관리비는 갑 지역은 2만5천 원 정도이고, 을 지역은 2만 원 정도이다. 병 지역은 2층으로 갑, 을 지역에 비해 소득이 적어 관리비는 1만5천 원 정도이며, 정 지역은 생어시장 주변으로 1만 원 정도를 낸다.

변영회에서는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하기 힘든 일들을 함께 해나가는데, 정부나 행정기관에 시장과 관련된 일들을 건의하고, 상인들의 복리를 증진하며 시장시설 문제에 대해서 함께 해결해나간다. 번영회에서는 회원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주로 단체여행을 간다.

중앙시장 내 동운상회 : 중앙시장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시장 안에는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점포들이 제법 된다. 그런 점포들의 역사가 곧 중앙시장의 역사이며 중앙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기에, 한 개의 점포를 선택하여 점포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증조할아버지 이후 4대째 동운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강원길[61세, 옥봉동 664-2 동운상회]씨는 19세 때부터 장사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본래 장대동에서 장사를 했는데, 장대동에는 당시 삼베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었고, 또 대나무를 파는 죽물전도 있었다. 할아버지 때에는 외장으로 다니면서 삼베를 팔기도 하였는데, 중앙시장에서 삼베장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로 건물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노점으로 가마니를 펴놓고 장사를 했었다. 본래 가게가 있던 자리는 목화전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땅이 국가 소유로 있다가 개인에게 땅을 모두 팔면서 개인 소유로 바뀌었다. 점포들이 개인 소유로 바뀌면서 노점으로 하던 것을 점포를 사서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삼베는 자신이 동네시장을 다니며 할머니들이 짠 삼베를 직접 사오기도 했지만 삼베를 짠 사람들이 직접 팔러 오기도 했다. 함양·거창·산청 등지에서 삼베를 팔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삼베를 사러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서부 경상남도지역에서 많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구까지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대부분 대구로 거래를 많이 하러 가서 장사가 예전만 훨씬 못하다고 한다. 또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삼베장사가 잘 되었는데, 지금은 중국산 삼베가 들어와 싸게 팔리면서 국산 삼베는 잘 팔리지 않을 뿐 아니라 병원에서 장례식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장례업까지 쇠퇴해 장사가 잘 되지 않고 있다.

삼베도 모든 지역이 같은 삼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강원길씨는 자신만의 장사 비결로, 가격에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한번 손님은 꼭 다시 찾도록 하고 있다. 물건을 산 손님은 반드시 다시 찾도록 하고, 물건을 사지 않은 손님도 다음에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항상 웃으면서 손님을 대하고, 물건은 항상 좋은 것만 팔아 손님이 만족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물건은 최소한의 이익만 보고 싸게 팔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곳을 들러보아도 값이 싸면서 품질이 좋은 곳이 없기 때문에 꼭 다시 온다고 한다. 장사를 하면서 특별히 꺼리는 금기는 없지만 아침 첫손님이 가격만 물어보고 가면 “마실(마수거리)을 사가면 좋을텐데…….” 하면서 아쉬워하는 정도이다.

지금 있는 가게는 구석진 곳이라 아는 손님만 오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되지 않아 번영회비는 한 달에 2만 원 정도 내고 있으며, 매년 번영회 날에 체육대회나 여행을 가기도 한다. 예전에는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에 가게를 쉬었지만, 지금은 경기가 어렵고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매주 일요일마다 쉰다.

중앙시장 살리기 : 전국의 재래시장이 대규모 유통시설의 등장과 이에 따른 경쟁력 상실로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진주 중앙시장도 예외일 수 없어서 사양길의 중앙시장을 되살려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었고, 현재 이를 위한 중앙시장 번영회와 진주시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특별법을 발의해 놓고 있다. 2014년까지 10년간 시행할 이 특별법은 쇠락하는 서민경제의 상징인 재래시장을 살려 대형할인점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취지다. 또한 진주시에서는 중앙시장의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주차장 시설의 확충 등 가시적인 성과도 보여주고 있으나,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은 상거래의 활성화를 위한 진주시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중앙시장은 2001년 11월에 번영회 사무실에서 LG카드사와 ‘진주중앙시장쇼핑-LG카드’업무제휴조인식을 거행했다. 재래시장이 급변하는 유통변화에 대응하기 힘겨워하고 있는 이때, 진주중앙시장이 재래시장으로서는 경상남도 내에서 처음으로 신용카드사와 제휴를 맺어 거래의 활성화에 큰 기대를 걸게 되었다. 제휴 카드는 진주중앙시장쇼핑-LG 2030, 레이디, 에이스 등 3가지 종류이며, 이번 업무 제휴로 양측은 중앙시장 일대의 상권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공동마케팅을 전개하게 되었고, 또 현재 1,045개의 회원 업소 중 상당수가 가맹점으로 가입할 것으로 보여 재래시장의 불편을 크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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