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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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迎送倉 |
영어의미역 | Yeongsongchang Warehou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곡식 보관 창고.
[제정경위 및 목적]
영송창(迎送倉)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영송고(迎送庫)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영송고는 영송도감(迎送都監)에 소속된 관아의 하나로, 사람을 맞이하고 보내는 데 필요한 돈과 물품을 담당하였다. 영송창은 창원도호부 관아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데 필요한 경비로 사용될 곡식을 보관한 창고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송창은 창원도호부의 관아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관련기록]
1832년에 편찬된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 1895년에 편찬된 『영남읍지(嶺南邑誌)』, 1899년에 편찬된 『창원읍지(昌原邑誌)』 등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창원부읍지』에 따르면, 영송창에 보관된 물품은 벼가 862섬 11말 8되 5홉이었고, 쌀이 621섬 4말 5되 2홉이었다. 그리고 콩이 211섬 10말 1되 2홉 5줌, 메밀이 21섬 8말 7되 1홉, 보리가 414섬 11말 7되 5홉이었다.
[변천]
『영남읍지』에 의하면, 1832년에 편찬된 『창원부읍지』의 내용과는 변화가 있었다. 보관된 물품에서 벼는 945섬 14말 9홉 1줌이었고, 쌀이 1,613섬 5말 2되 4홉이었다. 그리고 콩이 170섬 13말 4되 3홉 4줌이었고, 겉보리[皮牟]가 932섬 1말 3되 1줌이었다. 1899년에 편찬된 『창원읍지』의 기록에서는 영송창은 지금은 폐지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