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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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府內面一運 |
영어음역 | Bunae-myeon Ilun |
영어의미역 | Bunae-myeon Ilun Administrative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개설]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부내면(府內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부내면(府內面) 산하에는 모두 2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부내면 일운은 부내면 소속의 2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9개의 리를 두고 있었다.
당시 부내면 일운에 소속된 9개리는 구체적으로 중동리(中洞里), 서부리(西府里), 황동리(黃洞里), 동정리(東井里), 서정리(西井里), 평산리(平山里), 용산리(龍山里), 차상리(車廂里), 봉암리(鳳巖里)였다. 이 중 중동리(中洞里)와 서부리(西府里)는 부중(府中)에 있었으며 황동리(黃洞里)·동정리(東井里)·서정리(西井里)는 부(府)에서 2리, 평산리(平山里)와 용산리(龍山里)는 부의 관문(官門)에서 5리, 차상리(車廂里)와 봉암리(鳳巖里)는 부의 관문에서 15리의 거리에 각각 위치하고 있었다.
[관련기록]
『호구총수(戶口總數)』(1789), 『교남지(嶠南誌)』(1867~1873), 『영남읍지(嶺南邑誌)』(1895), 『창원읍지(昌原邑誌)』(1899) 등에 관련기록이 나타난다.
[내용]
『경상도읍지』(1832)보다 약 40년 뒤에 편찬된 『교남지』에는 부내면 일운에 속한 고을들이 중동리·서상리·서하리·황동리·동정리·서정리·소계리·평산리·용산리·차상리·봉암리 등 11개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전과 비교하면 서부리가 소멸되고 서상리(西上里)와 서하리(西下里)가 새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경상도읍지』보다 약 40년 전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소계리(召界里)가 다시 부활하였다. 이는 서부리가 서상리와 서하리로 분리되었고 평산리와 용산리 지역에 편입되었던 소계리가 다시 분리·독립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상도읍지』보다 약 60여 년 뒤에 편찬된 『영남읍지』에서는 부내면 일운에 소속된 고을들이 중동리·서상리·서하리·동정리·서정리·소계리·평산리·죽전리(竹田里)·덕산리(德山里)·용산리·용주리(用珠里)·내동리(內洞里)·서용리(西用里)·봉암리 등 14개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전과 비교하면 황동리와 차상리가 소멸되고 죽전리·덕산리·용주리·내동리·서용리 등이 새로 등장하였다. 이는 황동리가 죽전리와 덕산리로, 차상리가 용주리·내동리·서용리로 각각 분할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창원읍지』에서는 부내면 일운에 소속된 고을들이 중동리·서상리·서하리·황동리·소계리·촌하리(村下里)·죽전리·정계리(井界里)·용산리·차의상리(車衣上里)·봉암리 등 11개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전과 비교하면 황동리·정계리·차의상리가 다시 부활하고 촌하리가 새로 등장하였다. 이는 동정리와 서정리가 통합되어 정계리로 개편·개칭되었고, 평산리와 덕산리가 각각 황동리와 촌하리로 개칭되었으며 용주리·내동리·서용리가 차의상리로 통합·개편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창원도호부는 1895년 창원군이 되었으며, 1908년에는 창원부가 되었다. 이 후 1980년 4월 1일 창원 지역 일원이 다시 창원시로 승격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중동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의창동에 속한 중동이 되었고, 서부리는 현재 창원시 의창동에 속한 서상동(西上洞)이 되었다. 황동리는 현재 창원시 의창동에 속한 서상동(西上洞)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동정리와 서정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의창동 속한 동정동이 되었다. 평산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반계동(盤溪洞)이 되었으며, 용산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차룡동(車龍洞)의 일부가 되었다. 차상리 지역은 현재 창원시 차룡동 일부와 내리동(內里洞)이 되었으며, 봉암리 지역은 현재 마산시 봉암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