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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71
한자 朴昌洙
영어음역 Bak Changs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운동가|열사
출신지 부산광역시
성별
생년 1960년연표보기
몰년 1991년연표보기
대표경력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회의 의장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노동운동가.

[활동사항]

박창수는 1990년 7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에 당선되어 활동하였으며,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회의 의장으로도 활동하였다. 거제의 대우조선 전면 파업(1991년 2월 8일)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모색하기 위하여 1991년 2월 9일~1991년 2월 10일에 열린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동조합회의의 간부수련회에 참석한 박창수는 급습한 경찰에 의해 동료 7명과 함께 구속되었다.

삼자 개입 건으로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박창수는 1991년 5월 4일 운동 시간에 밖으로 나와 구호를 외치다가 저지하는 교도관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시멘트 모서리에 머리가 7㎝ 가량 찢어지는 중상을 입고 안양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고 입원하였다.

1991년 5월 5일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과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들과 재회한 박창수는 치료를 받던 중 5월 6일 새벽 4시 45분경 의문사를 하였다. 검찰과 언론은 박창수가 병원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하였다. 노조와 유족 측은 유서 한 장 없이 죽을 수는 없다며 자살 발표를 완강하게 부정하였다.

5월 8일 검찰은 부검 결과 투신자살을 기정사실화하였다. 그러나 ‘고 박창수 위원장 옥중 살인 규탄 및 노동운동 탄압 분쇄를 위한 전국노동자대책위원회’의 진상조사단은 조사 결과 사인을 타살로 밝히고 “박창수 위원장은 5월 6일 새벽 4시경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가 우발적으로 죽임을 당한 후 투신자살로 조작되었다.”고 발표하였다. 박창수의 장례식은 6월 29일 안양추모제와 6월 30일 부산의 영결식 등 전국노동자장으로 거행되었다.

[상훈과 추모]

노동운동에 온몸을 던져 희생한 박창수는 현재도 수많은 노동자와 학생들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해마다 5월 안양역 부근에서 박창수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박창수 의문사 사건은 아직 명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4년 결정문에서 “국가안전기획부 요원의 개입 사실은 드러났으나, 국가정보원이 관련 자료 요청에 협조하지 않아 진상 규명 불능으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박창수 의문사 사건은 2008년 현재 ‘진실과 화해를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로 넘겨져 수사 중에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11.26 날짜 오기 수정 [활동사항]9월 8일->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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