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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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枕碧亭 |
영어의미역 | Chimbyeokjeong Tradition House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57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성격 | 전통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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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578 |
소유자 | 김성균 |
관리자 | 김성균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은 김귀(金龜)의 후손들이 세거한 김해 김씨 집성촌으로, 죽와(竹窩) 김시찬(金時瓚), 만휴당(晩休堂) 김만현(金萬鉉)[1820~1902], 눌재 김병린(金柄璘)[1861~1940] 등 뛰어난 학자와 문장가를 배출하였다. 침벽정은 그 중심이 되는 집이다.
침벽정 안에 있는 양선수(梁宣洙)의 「쌍주재기(雙珠齋記)」과 김봉식(金鳳植)의 「죽와기」에 집을 지은 내력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쌍주재기」에서는 ‘쌍주’의 의미를 김시찬이 그의 여러 아들들에게 한 말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높지 않으면 세속의 속기를 끊을 수 없고 트이지 않으면 답답하게 막힌 것을 펼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터의 기반을 반드시 견고하게 하여야 한다. …… 집을 지을 때 그 기반이 공고하지 않으면 쉽게 기울어져 무너진다. …… 방향을 반드시 바르게 하여야 한다. 방을 넣을 때 명암(明暗)이 적합하지 않으면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된다. …… 큰 나무를 용마룻대로 사용하고는 무거운 것을 지려는데 평범한 나무로는 지탱할 수 없다. …… 가는 나무를 서까래로 삼고는 적절히 사용해야 할 것이다.”
「죽와기」에는 ‘죽와’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대나무에서 대나무의 의미를 취한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대의 성질은 맑고도 야위다. 주인옹의 성품 또한 그러하다. 대의 절의는 곧고도 굳다. 주인옹의 성품 역시 그러하다. 대는 사계절을 지내면서도 가지를 다시 피우거나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뭇 초목과 같이 썩어지지 않는다.
이것으로 주인옹의 기질과 절의가 고고(高古)하여 범접하기 어려움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도연명이 국화를 좋아하였고, 주렴계가 연꽃을 좋아한 것이 전대와 후대에 감흥을 일으킨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어찌 대나무가 국화나 연꽃에 대비하여 백세 뒤에 그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을 가지런히 함이 불가하리오.”
[위치]
화양리 곡목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堂山)과 마을회관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있다. 침벽정이란 집 바로 앞에 흐르는 홍설내 또는 설계(雪溪)에 흐르는 푸른 물과 집 뒤의 푸른 산에 싸여 있다는 뜻이다.
[변천]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로 집주인 김성균에 따르면, 그의 조부인 김병기가 처음 세웠고 해방 전후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뒤쪽 창고 대들보에 ‘성조개국오백삼십칠년병인정월이십육일입주상량(聖朝開國五百三十七年丙寅正月二十六日立柱上樑)’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창고는 1925년에 지었다.
[형태]
앞면 3칸, 옆면 1칸의 목조 기와집이다. 특별히 재실의 용도가 아닌 일상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지어진 건물이며 죽와 김시찬, 만휴당 김만현 부자(父子)가 거주하였음을 밝히는 침벽정(枕碧亭), 죽와, 쌍주재(雙珠齋), 만휴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