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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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谷洞遺物散布地 |
영어의미역 | Archeological Site in Changgok-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신촌동 7-1|117|118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양화영 |
성격 | 유물산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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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신촌동 7-1|117|118 일대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신촌동에 있는 삼한시대 유물산포지.
[위치]
창곡동 유물산포지는 창곡마을 뒤편의 독립 구릉(114.2m) 정상부에서 북쪽 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5˚ 12´ 41.3˝, 동경 128˚ 38´ 51.8˝에 위치한다. 마산만에서 창원시로 진입하는 4차선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변에 높이 36m의 독립상 침식 구릉지와 그 뒤쪽 사면 말단부에 있다. 북쪽으로는 창원 삼동동 고분군, 외동 조개더미, 내동 패총이, 남쪽으로는 창곡동 고분군, 동쪽으로는 창원 가음정동 고분군과 조개더미 등이 입지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9년 창곡동 일대에서 한국수자원공사의 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이루어짐에 따라 원 지형의 현상 변경이 불가피하자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과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구릉 정상부와 남동쪽 사면에서 삼한시대 구덩 유구 27동, 가마 1기, 유물 포함층과 조선시대 가마 1기가 조사되었다.
[형태]
구덩 유구와 주거지는 잔존 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이며, 규모는 140~640㎝×130~370㎝이다. 바닥은 일부는 생토면을 이용하였으며, 간혹 불다짐한 것도 보인다. 10호, 11호 주거지에서 노지가, 10호, 17호 주거지에서는 기둥구멍이 확인되었다.
특히 17호 주거지는 내부에서는 화재로 인해 지붕이나 벽이 내려앉은 벽체 시설이 조사되었다. 구덩 유구의 평면 형태는 원형과 말각 장방형으로, 규모는 160~340㎝×40~195㎝이며 소형이다. 바닥은 평탄하게 처리하였다. 구덩 유구와 주거지의 출토 유물은 삼한시대 생활 토기가 대부분이다.
삼한시대 가마는 잔존 상태가 불량하여 원래 형태를 알 수가 없으며, 조선시대 가마는 자연 경사면을 따라 형성된 등요로 일시적으로 사용하고 난 뒤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유물 포함층은 유적의 남동쪽 곡부에서 확인되는데, 2층으로 구분된다. 1층은 조선시대 문화층으로 분청사기와 기와편이 출토되었고, 2층은 삼한시대 유물포함층이 확인되었다. 층간의 교란 흔적은 없고, 두 시기의 구분은 명확하다. 유물 포함층은 자연 경사면을 따라 곡간부에 퇴적된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유물]
창곡동 유물산포지에서는 삼한시대 생활 토기와 조선시대 분청사기,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삼한시대 생활 토기는 연질 두드림무늬토기와 연질 민무늬토기가 대부분으로, 기종은 발·짧은목항아리·굽다리접시·옹이 주종을 이루며 증·컵·노형 토기·가락바퀴·손잡이잔[파배]·두귀항아리[양이부호]가 출토되었다. 간혹 같은 주거지 내에서 소성도가 완연히 다른 회색 도질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조선시대 유물은 분청사기와 기와편이 대부분으로 문화층에서 확인된다.
[현황]
2001년 발굴 조사 후 현상 변경이 이루어져 현재 아파트형 공장 지대가 입주해 있어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창곡동 유물산포지는 2세기 전후에 해당되는 삼한시대 유적으로, 창원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는 골포국의 일부를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