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6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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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濯淸臺碑 |
영어음역 | Takcheongdae |
영어의미역 | Takcheongdae Tombsto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재우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49년 - 창원 향교 소답동으로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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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탁청대 비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9 |
성격 | 문화 유적 |
관리자 | 창원 대학교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창원 대학교 내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
[변천]
탁청대 비는 ‘탁청대’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으로, 본래는 경상남도 마산시 합성동에 자리 잡고 있던 창원 향교 앞에 있었다. 창원 향교는 고려 충렬왕 때 유학자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으며,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창원 향교는 이건된 것이다.
창원 향교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1705년(숙종 31)에 부사 신면식과 도감 박태윤에 의하여 마산시 합성동 내상리 청룡산 아래로 이건되었다. 그러나 그곳 옥봉 아래의 지세가 “숭무(崇武)의 땅이지 숭문(崇文)의 땅이 못 된다.”라는 논의가 있었다.
그 뒤 1748년(영조 24)에 부사 이윤덕이 부임하자 향교의 이건을 건의하여, 다음해인 1749년에 현재의 소답동 자리로 옮겼다. 탁청대 비는 향교가 합성동에 있을 때 향교 앞에 설치된 것으로 향교가 소답동으로 옮겨간 후 홀로 방치되자, 당시 창원 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던 박동백 창원 문화원장이 창원 대학교 내로 옮겨 왔다.
[의의와 평가]
‘탁청’의 일반적 의미는 “밝고 빛나게 하다”라는 뜻이다. 『맹자』에 ‘탁탁(濯濯)’이 나오는데 ‘밝고 빛나다’라는 뜻이며,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도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을 것이다[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라는 글귀가 있다. ‘탁청’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용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보인다.
경상북도 문경시 선유동 계곡에 구곡(九曲)이라 이름 붙인 경치 좋은 곳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탁청대(濯淸臺)로, 글씨가 바위 위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여기서의 ‘탁청’은 “세상 시름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한다.”라는 의미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영주 소수 서원에는 탁청지(濯淸池)가 있는데, “학문 연마를 통하여 마음을 밝고 깨끗하게 한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창원 향교 앞에 있던 ‘탁청대’의 의미도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학문에 증진하라.”는 의미를 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