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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동 김해 김씨 부자 포효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673
한자 明西洞金海金氏父子褒孝碑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Father and Son in Myeongseo-dong
이칭/별칭 부자상호비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17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비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관련인물 김우진|김창용
재질 화강암
높이 120㎝
너비 50㎝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명서동 174-9 지도보기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명서동에 있는 조선시대 김해김씨 부자(父子)의 효성을 기려 세운 정려비.

[개설]

조선 순조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 사람인 김우진(金禹振)[1795~1835]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자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하였음을 자책하며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집에서 기르던 개도 주인의 행실을 본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삼 년 동안 비바람을 무릅쓰고 시묘살이를 하는데 한 번은 심한 폭풍우에 지척을 분간할 수 없어 헤매니 하늘이 감동하여 귀화(鬼火)로써 밝혀 주었다고 한다.

한편 김우진의 아들 김창용(金昌瑢)[1822~1845] 또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열 살 때부터 부모가 추위에 떨고 끼니를 제대로 못 한다고 걱정하며 직접 농사짓고 땔나무를 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김우진이 연로하여 병이 들자 뱀의 알이 양약이란 말을 듣고 백방으로 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까치의 도움으로 김우진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명서동 부자 포효비와 관련하여 경상남도 창원시 일대에 「부자상호비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건립경위]

명서동 부자 포효비김우진·김창용 부자의 효행을 아는 김사백(金思百)·안기석(安琦錫)·김호원(金鎬源)·김병린(金柄麟) 등이 고을에 장계(狀啓)를 올려 포상과 정려를 건의하고, 그 내용을 돌에 새겨 세운 것이다.

[위치]

명서동 부자 포효비경상남도 창원시 명서동 명지노인회관 앞뜰에 세워져 있다.

[형태]

시멘트로 만든 2단의 비단 위에 세워져 있다. 비석은 지붕돌[가첨석]과 비신, 비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지붕돌을 더한 전체 높이는 150㎝이며, 비신의 높이는 120㎝, 너비는 50㎝, 두께는 19㎝이다.

[금석문]

명서동 부자 포효비 정면에 ‘김해김씨부자포효비(金海金氏父子褒孝碑)’라 새겨져 있다. 뒤쪽에는 부자의 효행을 기리는 내용을 담았다. 1958년(무술년) 3월 노근용(盧根容)이 글을 짓고, 글씨는 김종하(金鍾河)가 썼다.

[현황]

경상남도 창원시 명서동 명지노인회관 앞뜰에 세워져 있는 명서동 부자 포효비 옆에는 1979년에 세운 김차곤공(金次坤公)을 기리는 비가 나란히 서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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