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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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原金氏 |
영어의미역 | Changwon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집필자 | 박태성 |
[정의]
김을진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연원]
창원 김씨(昌原金氏)의 시조는 김을진(金乙軫)이다. 그의 처음 이름은 김광준(金光俊)으로, 김알지의 45세손이며,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鐘)의 17세손이다. 김을진은 고려 후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라 태자첨사(太子詹事)로 동궁(東宮)의 사무를 관장하였고, 공민왕 때 홍건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창원(昌原)으로 하게 되었다.
김을진의 아들 김원(金元)은 고려 충혜왕 때 참지 정사를 지냈고, 상호군으로 피난 가는 왕을 호종하여 1등 공신이 되었다. 그 뒤 충정왕 때에는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올라 공을 세워 의창부원군(義昌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이 때문에 창원 김씨의 시조를 김을진으로 할 것인지 김왈원(金曰元)[초명은 김원]으로 할 것인지 논란이 있다. 김원의 손자로 참판을 역임한 김갱(金鏗)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김맹창(金孟昌)은 호가 독곡(獨谷)으로 세종 때 문과에 등과하여 군수를 지냈고, 그의 후손에서 부안파(扶安派)와 연천파(連川派)를 이루었다.
김갱의 차남 김중창(金仲昌)은 용안 현감을 지냈고 그의 후대에서 금천파(金川派)로 갈라졌다. 셋째 아들 김계창(金季昌)은 1461년(세조 7) 문과에 급제하였고, 예종 때 춘추관·홍문관 직제학을 거쳐 1481년(성종 12) 이조 참판을 지냈으며, 김계창의 후대에서 파주파(破州派)·상주파(尙州派)·창원파(昌原派) 등으로 나누어졌다. 창원파로 나누어진 것은 김만서(金晩瑞)의 후손으로 김녕(金寧)으로 관적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녕 김씨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설(金殷說)의 후손들이며, 그들의 족보에 창원 김씨 창원파에 대한 기록이 없어 이후의 세계는 불문명하다.
[현황]
창원 김씨는 창원을 관향으로 하는데, 실제 김을진과 김왈원의 후손들이 창원에 이거하여 정착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며, 현재 창원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거나 세거지를 가진 창원 김씨 또한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