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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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相圭 |
영어음역 | Bak Sanggyu |
이칭/별칭 | 朴商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동 249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홍혜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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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북동 249 |
성별 | 남 |
생년 | 1929년 |
[정의]
일제강점기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박상규의 호는 우정(愚庭)으로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1931년 만주 침공과 1937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기우는 상황 속에서 일본은 우리 민족의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더욱 강요했다. 박상규는 당시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동정리에 있던 창원보통학교 출신의 급우들과 청년독립회를 조직하여 일제가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상규는 1943년 4월 ‘조선독립만세’라는 문구를 창원역과 창원의 주요 관문에 붙인 소위 ‘창원만세사건’을 주도하다 1944년 12월 진해헌병대에 의해 발각되어 검거되었다. 그 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부산형무소에서 8개월 동안 수감되었다가 8·15광복을 맞아 출옥했지만, 수감 생활 중의 고문의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다.
[상훈과 추모]
1974년 국가안보 부문에 기여하여 표창을 받았고, 1995년 독립유공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