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3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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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谷里-鎭北面- |
이칭/별칭 | 인곡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종호 |
개설 시기/일시 | 1910년 - 인곡리 마산부에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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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진동면 일부와 함안군 병곡면 야현리 병합, 인곡리 창원군으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80년 - 인곡리 의창군으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인곡리 마산시로 편입 |
법정리 | 인곡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인곡리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176명 |
인구[남,여] | 418가구[남자 245명, 여자 173명]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직곡리(直谷里)는 당시 인곡리와 병존하다가 1914년 인곡리로 통합되면서 정곡(正谷)[바른골, 바랑골] 마을이 되었다. 직곡리와 정곡의 대응에서 ‘바르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대응성은 의곡리(義谷里)의 의(義)[바르다|옳다]의 뜻을 직(直)·정(正)으로 대치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곡리는 ‘실’ 또는 ‘골’에 가깝게 불렸을 것으로 파악된다. 의곡리가 이와 같은 형태를 나타내는 것은 서를 뜻하는 ‘~’계 지명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인곡리도 의곡리와 동일한 생성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진북면의 옛 이름은 진해현 북면이었다. 『여지도서』에는 방리 이름으로는 처음 나오며 이후 지리지에도 확인된다. 1895년(고종 32)에는 진주부 진해현 북면이었고 1908년(순종 1))는에 창원부 진북면이 되었다. 1910년에 마산부 진북면이 되었고 1914년에는 창원군 진북면이 되었으며 1995년에는 마산시 진북면이 되었다. 진북면은 진해현의 진과 진해현의 북면을 모아 만든 한자어 지명이다.
『호구 총수』에 나오는 의곡리(義谷里)는 지금 인곡리 정곡(正谷) 마을의 옛 이름으로 추정된다. 의곡리는 『호구총수』에서 진해현 북면에 속한 방리로 기록되었고 『영남 읍지』에는 의곡리로 표기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의곡 마을과 동삼 마을이 합쳐져 의동리가 되었으며, 의동리는 다시 직곡리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자연 환경]
인곡리는 야반산[342m] 자락에 위치하여 뒤로 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태봉천, 인곡천[6,200m], 인곡 1·2·3천이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현황]
인곡리는 북으로 이목리, 서로는 진전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남으로는 예곡리, 동으로는 대평리가 있다. 인곡리의 인곡교는 근곡리와 경계가 된다.
인곡리의 옛 마을은 인곡[의실, 의곡], 바름골[바랑골, 정곡, 직곡], 샛땀[동삼], 숲안, 아래땀, 웃땀, 함박골 등이 있다. 아래땀은 의곡 아래에 위치하고 웃땀은 위에 위치하였다.
문화유적으로 효인문이 있으며 1974년 2월 16일 지정된 시도 유형 문화재 제 72호인 의림사 삼층 석탑이 진북면 인곡리 439에 소재하고 있다. 1985년 1월 14일 지정된 시도 기념물 제 77호 인곡리 모과나무 역시 인곡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