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4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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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丸西座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종갑 |
[정의]
경상남도 마산부 야나기마치[柳町][현재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창동]에 있었던 영화관.
[개설]
환서좌(丸西座)는 1907년에 세워진 일제 시대 창원시 최초의 극장으로, 수좌(壽座), 도좌(都座), 앵관(櫻館) 및 진해 지역의 묘락좌(妙樂座)과 함께 일본의 가부키 공연 및 영화 상영을 통해 문화 공간으로서 기능하였다.
[건립 경위]
마산 최초의 극장 환서좌는 1907년경 일본 전통 공연물을 중심으로 일본인을 위한 가부키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연극 전용 극장이었다.
[변천]
마산 최초의 극장은 1907년부터 1934년까지 존재했던 환서좌(丸西座)였다고 한다.
「경상남도 안내」[경상남도청, 1914년]에 의하면 당시 마산에는 신마산 야나기마치(柳町)의 환서좌와 미야고마치[都町][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의 도좌(都座) 등의 극장이 존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34년 11월 1일자 『삼천리』 잡지에 실린 「삼천리기밀실(三千里機密室)」이라는 기사에는 전국의 극장 목록이 실려 있는데 그 속에 마산 환서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도 1914년에서 1934년 사이에 극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복환모 교수가 쓴 논문에 실린 「활동사진 필름 검열 개요」[조선 총독부 경무국, 1931년]에서 환서좌의 경영자가 나카무라 쵸우[中村肇]이며 관객 정원은 500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마산 항지」[1926년]에서는 환서좌가 1907년 늦여름에 건설되었으며, 신마산 야나기마치(柳町)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환서좌가 비록 가부키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연극전용 극장이었지만 후기에 들어서는 영화도 상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25년 5월 20일자 「조선 시보」에 따르면 신마산의 환서좌와 구마산의 수좌에서 각각 24일, 25일 영화가 상연되었는데, 이 영화는 일본의 인단 제조회사인 대립 인단(大立仁丹)이 ‘인단 애용자 초대 영화 대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상영작은 일본 송죽 키네마가 제작한 7권짜리 일본 시대극 「시라누히(不和火)」를 비롯하여, 미국 셀즈닉사 제작, 알렌 함마슈타인 주연의 7권짜리 대활극 「여자는 마침내」, 실사물 「어대전성의(御大典盛儀)」, 「지구 이야기」, 「해저의 경이」, 만화 「고와메모자」, 위생극 「인단의 빛」, 현대극 「범인수기사꾸」, 활극 「바다의 외침」, 「창녀」 등 총 10편이 상연되었다고 한다.
환서좌에서 상영된 최초의 발성 영화는 닛카츠[日活] 제작, 후지와라 요시에[藤原義江] 주연의 1930년작 「고향」이었다.
[구성]
환서좌는 가부키좌[歌舞技座]를 본뜬 목조 2층 건물로 500~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현황]
마산 환서좌는 회전 무대를 갖추고 관객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부키 극장으로 설립되어 일본 전통물을 중심으로 월 12회 공연하였다. 관객은 일본인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영화 상영도 하였다. 1907년에 건설되어 1934년경까지 존재하였는데, 현재 신마산 신창동 지역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정확히 어떠한 이유로 폐지되었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