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0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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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在馬山日本居留民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윤상 |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창원 마산 지역에 있었던 일본인 단체.
[변천]
1899년 마산포 개항 당시 마산포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2, 3명에 불과하였지만, 각국 공동 조계 경매 이래 이주자가 점차 증가하여 다음 해인 1900년 봄에는 30여 명에 이르렀다. 이에 마산 거주 일본인들은 야마타[山田敎文]를 총대(總代)로 추대하고 평의원 3명을 선출하여 ‘마산 일본인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마산 거주 일본인이 점차 증가하여 2백여 명에 이르자 ‘마산 일본인회’는 1903년 1월 ‘마산 일본인 거류 민회’로 개편하고, 대표인 이사를 거류 민회 민장으로 변경하였다.
1905년 삼랑진에서 마산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 개통되고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마산으로 이주하는 일본인이 급증하여 1906년 9월에는 2, 400여 명[각국 공동 조계 1,322명, 마산포 703명, 완월교 동쪽으로 척산교에 이르는 중앙부에 408명 등]에 달했다.
일본 정부가 거류민단 제도를 시행하면서 ‘마산 일본인 거류 민회’는 마산 이사청 미마시[三增久米吉] 이사관을 감독관으로 하는 ‘마산 일본 거류민단’으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거류민단 제도 시행 구역 내의 마산 거주 일본인들은 규정대로 선거를 통해 의원 10명을 선출하고 민단 서기 2인을 채용함과 함께 진해교 곁의 러시아인 소유 빈집에 사무실을 개설하면서 ‘마산 일본 거류민단’이 출범하였다. 한편 1908년 5월에는 타나카[田中遜] 등 마산의 일본인 실업인 29명이 발기하여 ‘마산 상업 회의소’ 설립 인가를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