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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마산 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03
한자 新幹會馬山支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7월 20일연표보기 - 신간회 마산지회 설립
성격 항일 민족 운동 단체

[정의]

1927년 경상남도 창원 마산 지역에서 설립된 신간회 소속 지회.

[변천]

마산에서는 1927년 7월 20일 신간회 마산 지회가 설립되었다. 1929년 12월 27일 제3회 정기 대회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12월 23일 일제 경찰이 금지 명령을 내렸다. 1930년 1월 5일 신간회 마산 지회 집행 위원회를 열려고 마산 경찰서에 집회 계를 제출했으나 일제는 '연말 경계'란 구실로 집행 위원회도 금지하였다. 1930년 말 부산 지회의 해소 결의를 시작으로 각 지회 해소 결의가 잇따랐다. 그러나 마산 지회는 1931년 1월 18일 개최된 마산 지회 집행 위원회에서 "역사적 변화의 계단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사회 정세로서는 급각도로 해소할 변전이 없으므로 해소에 반대"하기로 하였고 3월 29일 제4회 정기 대회에서는 정식으로 해소 반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1931년 5월 16일 조선 중앙 기독교 청년회에서 대의원 77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소 대회를 열고 해산을 결의, 창립된 지 만 4년 만에 해소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마산 지회는 신간회의 지회 가운데서도 적극적 활동을 펼친 대표적 단체였다. 마산 지회는 신간회 중앙 본부의 강령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모호함에 따라 투쟁을 전개하는 데 한계가 있어 1928년 2월 본부에 강령의 개정을 요구하며, 자체 강령을 작성하였다. 이 외에 언론·집회·출판·결사의 자유, 조선어 교육의 실시, 토지 개량 회사의 00, 노동·농민·청년·소년·부인·형편 운동의 건, 일본 무산 정당과의 제휴와 같은 각 지회에서 계속되는 건의 사항을 마산 지부에서도 정책으로 제시하였다. 1927년 12월 말과 1931년 3월 말에 채택된 토의 안건으로 '재만 동포 옹호 동맹에 관한 건, 사립 마산 의신 여학교 동맹 휴교 사건에 대한 조사 검토에 관한 건' 등이 토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9년에 이르러 일제의 신간회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으로 마산 지회의 활동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는 일제의 마산 지회 정기 대회 및 모임을 금지 조치한 것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이로써 마산 지회는 정책의 구체적인 실현이 어렵게 되었다.

[현황]

마산 지회는 김용환·명도석·이형재·김형철 등 민족주의 세력과 여해·김명규·김형두·손문기·이주만 등 사회주의 세력과 이전까지의 노동 야학, 3·1 운동 및 청년·노동·농민 운동 등 대중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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