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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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國革新勢力集結馬山促進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재우 |
[정의]
4·19 혁명 이후 경상남도 창원 마산 지역에서 설립된 사회 단체.
[설립 목적]
이승만 독재 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사회적 변혁, 남북통일 운동 등과 같은 민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설립되었다. 혁신 세력의 정치 활동 참여를 주장하면서 사회대중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7월 29일 총선거에서 정치적인 진출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60년 4월 30일 부산에서 한국 혁신 세력 집결 촉진회가 결성되었다. 이에 마산에서도 1958년 진보당 사건 이후 세력이 위축되었던 혁신 세력이 마산에 등장하였다. 5월 4일에 마산 일보에 성명서가 개재되었는데, “혁신을 위하여 일어났던 마산의 시민이여 대동단결하여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말자…한국 혁신 세력 집결 촉진회 마산 지구 조직 위원 정우근”이라는 내용이었다. 마산의 혁신 세력은 1960년 5월 5일 「마산 일보」에 ‘한국 혁신 세력 집결 마산 촉진회’ 명의의 격문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이들은 5월 7일 혁신 정당 발기인 46명 중 35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회를 열고 한범석을 임시 의장으로, 이상두·김문갑을 부의장으로 선출하고 7개 부·차장을 선임하였다. 한범석은 6월 12일 마산 양민 학살 유족회를 결성에 참여하여 회장으로 취임하고 2개월간 직무를 수행한다. 김문갑은 사회대중당 마산시 당 준비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다. 이런 과정에서 마산의 혁신 세력은 김문갑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대중당 마산시 당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여나가지만 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다시 강제 해산되고 주요 인물이 투옥되는 등 시련을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