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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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頭山號戰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재우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6·25 전쟁 시기 우리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이던 백두산호가 북한 수송선을 상대로 수행한 최초의 해상 전투.
[개설]
백두산호(白頭山號)[PC-701]는 6·25 전쟁 시기 우리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이 군함은 국민과 해군 장병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것으로 1950년 4월 10일에 진해에 입항한 3″포를 장착한 주력함이었다. 백두산호는 약 2개월 동안 국내 주요 항구를 순방하면서 항해 및 해상 훈련을 마치고 6월 24일 모항인 진해로 돌아왔다.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12시에 진해 통제부 사령관[대령 김성삼]의 출동 명령을 받고 비상소집을 발령하여 출동 준비를 완료하고 오후 3시에 AMS-512정과 AMS-518정을 지휘하여 진해항을 떠나 동해로 항진하였다.
[역사적 배경]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북한군이 남한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하여 수송선에 해군 및 지상군을 싣고 대한 해협으로 남하하였다.
[경과]
1950년 6월 25일 진해를 떠난 백두산호는 오후 6시 38분에 부산 앞바다의 오륙도 등대를 지나 북상하여 7시 30분에 울산 앞바다를 향하였다. 8시 12분에 부산 동북방 20해리에서 수평선상에 검은 연기를 발견하고 즉시 추격하였다. 정체를 확인해 보니 국기와 배이름이 없었고, 갑판 후부에는 중기관총 2정과 수병복을 입은 정규 해군과 북한군 다수가 있었으므로 북한 선박임을 확인하였다. 6월 26일 00시 10분에 적선을 격침하라는 해군 본부의 명령을 받고 3″포로 사격을 시작했다. 우리 해군으로서는 최초로 체험하는 야간 전투였으며, 발사한 포탄 20발 가운데 5발이 명중하였다. 그리고 적선 우현 1,000야드까지 접근하여 다시 3″주포와 중기관총을 사격하여 북한 선박의 마스트를 파괴하였으며, 기관실을 명중시켰다. 하지만 북한 선박은 여전히 포를 쏘며 대항해 왔다. 이때 북한군의 포탄이 백두산호 조타실 하부를 관통하여 4명의 전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백두산호는 일단 오전 1시 20분까지 전속력으로 북한 선박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북상하면서 침몰 여부를 확인하였다. 전투 해역을 4시간이나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26일 오전 1시 38분에 북한 선박이 침몰된 것으로 판단하고 오전 5시 45분까지 묵호 방면으로 북상하였다. 당시 북한 선박은 1,000톤급 수송선이었고, 병력은 해군 및 지상군 600명이었다.
[의의와 평가]
백두산호와 북한 수송선의 대한 해협 전투는 우리 해군에서 최초로 성공한 단독 해상 작전이었다. 남해안에 북한군이 상륙하여 후방을 교란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였던 것이 큰 의의라 하겠다. 만약 이 작전이 실패했다면 남해안에 북한군이 상륙하여 개전 초기의 전세가 매우 위태로웠을 것이다. 특히 남한에서의 군수 물자와 증원군이 입항할 수 있는 유일한 주요 항구인 부산항은 당시 거의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 남해안에 상륙하는 무장 수송선을 격침시켰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