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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78
한자 金亨潤
이칭/별칭 목발(目拔)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3년 1월 22일연표보기 - 김형윤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5년 - 김형윤 마산 공립 보통학교 졸업
몰년 시기/일시 1973년 8월 7일연표보기 - 김형윤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4년 8월 18일 - 김형윤 불망비 건립[마산 산호 공원]
출생지 김형윤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지도보기
성격 언론인
성별
대표 경력 조선 일보 마산 지국 기자

[정의]

일제 강점기와 8·15 해방 이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출신 언론인.

[가계]

본관은 김해, 별호는 목발(目拔)이다.

[활동 사항]

김형윤(金亨潤)[1903~1973]은 1915년 마산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21년 귀국하여 창원 산업 조합에서 근무했다. 1923년 조선일보 마산 지국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남선 신문』, 『동아 일보』에서도 활동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아나키즘에 몰두하여 무정부 활동에 가담했으며, 1945년 12월 신탁 통치 반대 시위에 참여하다 종로 경찰서에 구금되어 1947년 봄에 석방되었다.

1947년 『남선 신문』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이 되었으며, 1948년 제호를 변경한 남조선 일보 사장 대리가 되었다. 1950년 『남조선 일보』를 『마산 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여 편집과 경영 전반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1957년에는 마산의 경제, 산업, 문화, 역사, 풍물 등을 총체적으로 다룬 『약진 마산』을 발간하였다. 그밖에도 『마산 시정 4년간』, 『민주 혁명 승리의 기록』[1960], 『마산 시정 20년』[1966] 등을 출판하였다. 1966년 마산 일보를 사직하고 물러난 후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73년 12월 5일 유작으로 『마산 야화(馬山野話)』로 발간되었고, 1974년 8월 18일에 마산 산호 공원에 불망비가 건립되었다.

별호가 목발(目拔)이 된 것은 다음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일제 강점기 마산 사쿠라 마치[櫻町]의 벚꽃이 한창일 때 일본인 요정에서는 가설 무대를 지어놓고 일본인 기생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일본 남자들과 어울려 가무가 한창이었다. 한 조선인 지게꾼이 흥에 겨워 관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일본 헌병이 민족적 모욕을 주며 그를 끄집어냈다. 이를 본 김형윤은 의분을 참지 못하여 일본 헌병에게 달려들어 그의 한쪽 눈을 뽑아 버렸던 것이다. 이 때문에 ‘목발’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마산 시정 4년간』, 『민주 혁명 승리의 기록』[1960], 『마산 시정 20년』[1966], 『마산 야화』[1973]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74년 8월 18일 마산 산호 공원에 불망비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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