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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84
한자 金炯斗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 김형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3년 8월 - 김형두 마산 노농 동우회 집행 위원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7년 7월 - 김형두 신간회 마산 지회 간사 역임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28년 - 김형두 제3차 공산당 사건으로 해외 도피
출생지 김형두 출생지 - 경상남도 마산부 만정(萬町) 242지
성격 공산주의 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조선 혁명자 구원회 책임자

[정의]

창원시 마산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

[활동 사항]

김형두(金炯斗)[1892~?]는 경상남도 마산부 만정(萬頂) 출신으로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귀국할 때는 마산구락부가 주최하는 환영회에 참석하였다. 1923년 7월 마산 무산 청소년단 고문이 되고, 8월 마산 노농 동우회의 집행 위원으로서 북성회(北星會) 순회 강연단의 활동을 후원했고, 사상 단체 혜성사(彗星社) 결성에 참여하였다.

1923년 9월 국제 청년 데이를 기념해 '무산자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1923년 말 모스크바로 가 러시아인에게 일어를 가르치고 노농(勞農)정부의 시정을 시찰하며 각 방면의 과학을 연구한 뒤 1926년 9월 14일에 귀국하였다. 이후 조선 혁명자 구원회[모쁠]의 책임자가 되었다. 1927년 1월 마산 사회단체 연합 신년 간담회에 참가하여 ‘정우회 선언(政友會宣言)’을 실천에 옮길 실행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7월 신간회 마산 지회 간사가 되기도 하였다. 1928년 2월 제3차 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의 검거를 피해 국외로 피신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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