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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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明茁 |
이칭/별칭 | 최명출(崔命出), 최강(崔强)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
[활동 사항]
최명줄(崔明茁)[1909~?]은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나 보통학교 졸업한 후 마산 어시장 점원으로 일하였다. 1929년 2월 마산 청년 동맹 집행 위원이 되고, 8월 마산 자유 노동 조합 검사 위원, 마산 노동 연맹 교육부 간사로 활동하였다. 1930년 3월 신간회 마산 지회 서무부원, 마산 자유 노조 정치 문화 부원, 6월 경남 청년 연맹 조직부원이 되었다. 1930년 8월 적색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경성 지법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적색 노조를 조직하기 위해 마산에 온 장규경(長奎景)과 함께 마산 적색 노조를 조직할 것을 협의하였다. 1932년에는 조선 공산당 재건사건으로 경성 지방 법원에서 1년 구형을 받았다. 1933년 5월 마산 어시장 점원들에게 ‘메이데이의 유래와 의의’에 대해 연설하였다. 11월 ‘러시아 혁명 제16주년 기념일을 맞이하면서’라는 제목의 격문을 인쇄하여 배포한 것이 발각되어 1934년 11월 6일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던 중 노동 조합 사건이 발견되었는데 주의의 선전과 동지 규합을 목적으로 적색 노동조합을 조직하여 일주일에 1회 이상 어시장과 중앙 매축지에서 비밀리에 어시장 일용 노동자에게 인쇄 공장 등에서 주의사 상을 선전한 사실도 발각되었다. 1934년 치안 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45년 8월 건국 준비 위원 마산 지부 결성대회에서 조직 부장으로 선임되었다. 1946년 말부터 조선 공산당 부산시당 책임을 맡다가 이후 경남 도책이 되었다. 남조선 노동당 중앙에서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