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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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將軍洞工場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남6길 86[장군동3가 13-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호열 |
건립 시기/일시 | 1945년 - 장군동 공장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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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장군동 공장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남6길 86[장군동 3가 13-1] |
성격 | 산업 시설 |
소유자 | 손삼권 |
관리자 | 손삼권 |
[정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에 있는 근대 청주 주조 공장.
[개설]
장군동 공장은 1909년 일본인 사업가 엔도 도요키치[遠藤豊吉]가 장군동 일대에 세운 청주[사케] 공장이다. 마산 지역은 물과 공기가 좋고, 인근에 김해 평야가 있어 쌀을 구하기 쉬웠다. 술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에 엔도는 청주 공장을 세우고, 이름을 지시마엔[千島園] 주조장이라 했다. 지시마엔 주조장은 한 해에 500석[약 9만 ℓ]에 달하는 청주를 생산했다.
광복 이후 공장은 술 도매상 손삼권에게 넘어갔으며, 공장은 삼광 청주 주조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극심한 식량난으로 쌀을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6·25 전쟁의 발발로 생산과 소비에 차질이 발생하였다. 여기에 주류 업자 간의 분쟁까지 겹쳐 1960년대에 이르러 일제 강점기 때 17개에 이르렀던 청주 주조장 중 7개의 주조장만이 남았다. 이마저도 제대로 운영되는 업체는 두어 곳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삼광 청주 공장을 운영하던 손삼권은 1958년에 칠성 주조장[현 신흥동 삼강 청주 공장]을 인수해 사세를 오히려 넓혔다. 그러나 ‘사람 먹을 쌀도 없는데, 쌀로 술이나 만든다’는 박정희 정권의 인식이 주조장의 명줄을 죄기 시작했다. 이에 생산량은 줄어갔으며, 급기야 1973년 군소 주류 업체의 통폐합이 시행되며 결국 두 주조장은 1974년 문을 닫았다.
[위치]
장군동 공장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남6길 86[장군동 3가 13-1]에 있다. 마산합포구청에서 장군천을 따라 가면 좌측 첫 사거리에서 중앙남6길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장군동 공장 주위에는 창고 및 사택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 철거되었고, 공장 건물 내부에는 블록으로 간단하게 벽을 쌓아 만든 주택들이 꽉 들어서 있다. 공장의 기능은 이미 상실하였고, 다만 공장 건물의 지붕과 굴뚝만 남아 있다. 공장 건물 주위에는 청주 공장이 운영될 때 사택 등으로 사용되었던 1층[103.8㎡] 또는 2층 규모의 목조 주택[66.12㎡]의 일부와 창고[67.44㎡] 등의 부속 건물이 남아 있다.
[형태]
장군동 공장은 콘크리트 블록조로 대지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에 붉은 벽돌로 쌓은 굴뚝이 높이 솟아 있다. 주변의 주택과 점포는 2층 목조로 지어졌으나, 현재 조적으로 개축된 상태이며, 지붕은 일식 기와를 이었다. 주택들은 좁은 출입구를 지나 중정에 긴 복도로 연결된 방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매우 협소하고 어둡다.
[현황]
목조로 된 2층 건물이며 같은 소유주 건물인 신흥동 공장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양쪽 부지를 합하여 6,600㎡ 가량 된다. 건축 면적은 129.42㎡이며, 공장은 지상 1층, 그 외는 지상 2층으로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은 청주 주조장으로 근대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1974년에 문을 닫을 때까지 오랫동안 창원 지역 사람들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마산 지역을 술 생산의 중심지로 발달하게 한 기원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