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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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家屋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북13길 41-1[산호동 562-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호열 |
현 소재지 | 김위성 가옥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북13길 41-1[산호동 5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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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포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축한 2층 가옥.
[개설]
김위성 가옥은 1930년경에 건축한 2층 주택으로 전해 오며, 소설가 지하련(池河蓮)[1912~?]의 셋째 오빠 이상조가 일제의 징용을 피해 은둔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지하련이 서울에서 내려와 거주했다고 하며, 집 옆에는 우물이 있다. 집 뒤는 산호 공원으로 한적한 느낌을 준다.
[위치]
김위성 가옥은 용마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집 뒤는 산호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남쪽에는 용마 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는데. 학교의 북서쪽 모퉁이에서 약 100m 북쪽으로 더 들어온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김위성 가옥에 거주했다고 전하는 소설가 지하련은 1912년 7월 11일에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일본 쇼와 여고를 졸업했다. 1935년 카프(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해산을 전후하여 당대 카프의 지도자였던 임화와 결혼하여 주목을 끌었다. 1940년 소설 『결별』이 백철의 추천으로 『문장』에 발표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광복 직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하여 1947년 임화와 함께 월북할 때까지 주요 작가로 활동하였다. 1946년 발표한 『도정』은 광복 후 문인들의 자기비판과 삶의 자세를 다룬 수작으로 평가받아 조선 문학가 동맹의 제1회 조선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결별』[1940], 『체향초』[1941], 『가을』[1941], 『산길』[1942], 『도정』[1946], 『광나루』[1947] 등과 시 「어느 야속한 동포가 있어」[1946]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소설집 『도정』[1948]이 있다.
[형태]
김위성 가옥은 근대에 만들어진 별장형 2층 주택으로, 정면 좌측에 있는 현관을 들어서면 2층으로 통하는 계단과 부엌, 작은방 등이 나오고,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앞쪽에 큰 창을 시설한 복도에 면해 큰 방이 자리 잡고 있다. 정면 우측에도 별도의 계단이 있어 2층으로 오를 수 있다.
지붕은 경사 지붕으로 일식 시멘트 기와를 덮어 마감했다. 외벽에 낸 창은 돌출형으로 외벽 면보다 밖으로 내밀어 창을 달고 그 위에 작은 캐노피를 시설한 형태이다. 대부분의 창 밖에는 철근을 용접하여 만든 방범창을 시설해 놓았다. 외벽은 시멘트 모르타르를 뿜칠하여 마감했으며, 지붕에는 생활상의 필요에 따라 상당수의 창과 문을 알루미늄 섀시 등으로 바뀌었다.
집의 외곽에는 붉은 벽돌로 쌓은 담이 둘러져 있다. 견치석을 쌓은 석축 위에 벽돌을 사용하여 담을 조성한 형태이다. 2층 주택 외에 목조로 된 1층의 창고[99.17㎡]와 물치[26.45㎡], 목조 1층 주택[51.27㎡]이 있으며, 13.22㎡의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대부분 크게 훼손 변형되어 있어 확인하기 어렵다..
[현황]
김위성 가옥은 지금은 비가 새서 부득이 지붕에 천막 천을 덮어 비가 새지 않도록 해 놓았다. 건축 후 주 생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크게 개조를 하지 않고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지붕과 외벽 등이 노후하여 비가 새고 이로 인해 재목이 부식하는 등 보존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다.
[의의와 평가]
근대에 만들어진 이층집으로 공간 구성과 재료 등에서 근대적 성격이 돋보인다. 전반적으로 일식 가옥의 공간 구성과 형태를 참조하여 건축했다는 점에서 근대 주생활사와 주택사의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다. 이에 더하여 소설가 지하련과 연고가 있는 가옥이라는 점에서 한국 문학사에서도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