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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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縣城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성산길 51[진동리 241-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안성현 |
현 소재지 | 진해현성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성산길 51[진동리 2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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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성 터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진해현의 치소성.
[개설]
진해현성은 조선 시대 진해현의 치소를 두르는 행정 구역 범위인 동시에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는 성격을 지닌 소규모 연해(沿海) 읍성이다. 경남 대학교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진해현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고, 현성 내부의 현상 변경으로 인한 부분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성의 대략적인 구조와 성격이 파악되었으나, 현재는 도시화로 인해 훼손이 심해 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다.
[위치]
진해현성은 해안으로 뻗어 있는 구릉 사이의 곡저 평야와 바다로 유입되는 진동천과 태봉천에 의해 형성된 충적지가 합쳐져 넓은 해안 평야가 형성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북서쪽으로 700m 지점에는 마산 사동리 토성이 있다. 이곳은 남쪽으로 진동만이 인접해 있어 바다로의 진·출입이 용이하며, 북쪽으로 경상남도 함안군, 동쪽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서쪽은 경상남도 고성군 등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에 해당한다.
[변천]
진해현성은 풍부한 문헌 기록을 가지고 있어 시대별 변화 양상을 파악하기 유리하다. 현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문종 실록(文宗實錄)』 1451년(문종 원년) 기록에서는 성의 크기를 “둘레 1,325척 4촌[약 400m], 높이 7척 4촌[약 2.2m], 여장의 높이 3척[약 0.9m]”라고 기록하고 있어, 본 성이 다른 읍성들에 비해 처음부터 작은 규모로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둘레 446척[약 135m], 높이 9척[약 2.7m]”으로 나타나 있으며, 『읍지(邑誌)』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기록도 읍성의 규모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진해현성은 처음에 1,325척으로 축조되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는 1530년에 어떠한 이유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자세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조사된 성벽이 초축 성벽인지 아니면 수축이 이루어진 후 축조된 성벽인지는 알 수 없다.
[형태]
진해현성은 곡저 평야에 위치하는 평지 연해 읍성으로 평면 형태는 방형에 가깝다.
[현황]
진해현성의 내부에는 현재 삼진 중학교, 진동 면사무소, 민가 등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며, 근방에는 마산 진동 유적[사적 472호]과 마산 사동리 토성이 위치한다. 주변 도로 개설 과정에서 시행된 지표 조사 및 발굴 조사와 문헌 기록, 현재의 유적 양상을 바탕으로 대략적인 구조 및 성격이 파악되었다. 현재 지적도 상에서 확인되는 현성의 둘레는 642m 정도이며, 지상에 남아 있는 현성의 길이는 200m 정도이다. 성내에는 1832년(순조 32)에 현감 이영모가 세운 관아가 진동 면사무소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객사는 1980년대에 화재로 소실되어 삼진 중학교에 초석만이 남아 있고, 길가에는 역대 현감들의 선정비 16기가 남아 있다.
진해현성에 대한 발굴 조사는 현성의 서쪽 모서리 부분을 동서로 지나가는 도로 개설 구간 내에서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체성(體城)과 해자가 청동기 시대 구(溝)와 목책열, 원삼국 시대 돌널무덤, 삼국 시대 덧널무덤 등과 함께 발견되었다. 성벽에는 생토층을 10~20㎝ 정도 굴착한 후 70~120㎝의 장대석을 이용하여 기단석을 두었으며, 성벽 상부는 대형의 할석으로 허튼층 쌓기를 하였다.
적심은 소형 잡석을 이용하여 채웠다. 해자는 굴착된 구 내면에 호안 석축을 쌓아 만든 것으로 일부 지역에서만 조사되었지만 나머지 지역에도 지중 탐사[GPR]를 실시한 결과 해자가 확인되었다. 따라서 해자는 체성부와 함께 읍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속 시설로는 체성 외에 여장(女堞) 229개, 치(雉) 4개소, 문지(門址) 3개소, 해자(垓字) 등이 있다. 내부 시설물로는 동헌[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24호], 객사[경상 남도 유형 문화재 제244호], 사령청, 마방 등이 있다. 그 외 향사방(鄕射堂)·군관청(軍官廳)·장관청(將官廳)·인리청(人吏廳)·통인청(通引廳)·사령청(使令廳)·관노청(官奴廳)·사창(司倉)·대동고(大同庫)·진휼청(賑恤廳)·육지군기고(陸地軍器庫)·별향고(別餉庫)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또한 성의 서북쪽에 사직단(社稷壇), 동북쪽에는 향교(鄕校)가 위치한다.
[의의와 평가]
진해현성은 조선 시대 전기에 축성된 연해 읍성으로 다른 지역의 읍성에 비하여 소형이지만 내부에는 많은 건물이 위치하였다. 조선 시대 태종~세종조에 전국적으로 읍성 축성이 이루어지는데, 진해현성 역시 이 때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진해현성은 도시화의 진행으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웅천읍성과 함께 몇 안 되는 해안 읍성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