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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여양리 민간인 학살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42
한자 馬山艅陽里民間人虐殺地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산275-1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마산 여양리에서 민간인 학살지에서 민간인 학살 발생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 마산 여양리에서 민간인 학살자 유해 발굴
현 소재지 마산 여양리 민간인 학살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산275-1임 지도보기
원소재지 마산 여양리 민간인 학살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산275-1임
출토 유물 소장처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 경남 대학교 박물관 지도보기
성격 6·25 전쟁 민간인 학살지
소유자 창원시
관리자 창원시

[정의]

6·25 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들이 집단으로 희생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일대에 있는 학살지.

[개설]

마산 여양리 민간인 학살지는 2002년 9월 4일 태풍 ‘루사’로 인해 산태골 숯막에 매장되어 있던 유해 일부가 유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일대에서는 6·25 전쟁 당시 진주 방면에서 끌려온 민간인들이 총살당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당시 진주 형무소의 재소자이거나 또는 진주 일대의 국민 보도 연맹원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마산시에서는 이 유해가 발견된 일대의 임야 약 2만 6000여 ㎡을 매입하고, 대책 위원회 및 유족 측과 합의하여 석관을 설치하였으며, 드러나지 않은 산태골 숯막의 유해들까지 수습하여 함께 매장하고자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서는 대책 위원회와 논의 하에 유해의 발굴을 통해 정확한 희생자 수와 피해자의 성격, 가해자 등을 밝히기로 하고, 그에 소요되는 일체 경비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충당하기로 하였다. 이에 2004년 4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약 2개월에 걸친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발굴 작업은 6·25 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발굴로,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서 진행한 ‘6·25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 대한 발굴의 표본이 되었다.

[현황]

발굴 작업은 당시 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겸임하고 있던 경남 대학교 사학과 이상길 교수가 중심이 되었고, 경남 대학교 박물관 조교 및 사학과 학생들이 자원하여 참여하였다. 작업은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유해가 수습된 숯막과 폐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작업 과정에서 너덜겅 2개소, 폐광 주변 3개소 등 5개의 돌무지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산태골 숯막 지역 1개소, 너덜겅 지역 2개소[돌무지 2], 폐광지역 4개소[동굴 1, 돌무지 3]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최초 폐광과 숯막은 봉해져 있어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상태였고, 돌무지들은 사살 후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주변의 돌을 이용해 조성한 무덤으로 추정되었다. 발굴 방법은 일반적으로 유적을 조사할 때와 동일하게 고고학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으며, 시신은 가능한 한 완전한 형태로 한구씩 발굴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그 결과 여양리의 민간인 학살지에서는 모두 163구 이상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시신과 함께 탄환과 탄피,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도장·옷·허리띠·단추 등의 유해도 함께 발굴되어 가해자와 희생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증거들도 발견되었다.

[의의와 평가]

마산 여양리 민간인 학살지에 대한 발굴은 자칫 잊혀버릴 뻔했던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 사건을 재차 기억하고 조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에서 유해가 드러남으로써 발굴 내용 및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가해자는 경찰과 국군이었음이 밝혀졌고, 희생자는 민간인이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6·25 전쟁 당시 자행된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를 통한 민간인 학살지에 대한 발굴 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또한 조사 방법에 있어서도 경남 대학교 박물관이 진행하였던 방식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민간인 학살지 유해 발굴의 모범으로 남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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