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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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厲祭壇址 |
이칭/별칭 | 여제,여제단,여단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 428-9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양화영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 진해 여제단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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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진해 여제단 터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 428-9 |
성격 | 사묘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에 있는 여귀를 위로하는 제사터.
[개설]
진해 여제단 터는 『웅천 읍지(熊川邑誌)』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1998년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 유적 정밀 지표 조사를 통해 여제단의 존재가 밝혀졌다. 여제는 목적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무속의 지노귀굿·씻김굿·망묵굿이나 불교의 천도재 등과 유사한 사령제 또는 위령제이다. 여제의 명칭이나 절차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유교적 제사의 절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인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여귀를 대상으로 정기적·비정기적으로 거행하는 위령제이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초기에 전래되었으며, 『국조 오례의』에 소사로 올려졌다. 조선 초기에는 지방 군현 단위마다 여단이 건립되어 지방의 중요한 제사 중 하나였으나, 조선 후기 전쟁과 잦은 전염병으로 인해 전몰처와 무수시매처를 중심으로 별여제가 자주 거행되었고, 각 지방의 동제를 통해 민간으로 확산되었다.
[위치]
『웅천 읍지』에서는 여제단이 웅천현의 북쪽 2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사 결과 여제단 유적은 천자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이어지는 높이 172m 정도의 구릉 동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북쪽으로는 시루봉-봉동산이 에워싸고 있고, 동쪽으로는 동천이 관류하고 있으며 남쪽에는 관정 마을이 입지해 있다.
진해 여제단 터 주변에는 진해 관정동 보호수, 북부동 토기 산포지 2~4, 진해 향교지 1·2 등 많은 수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형태]
진해 여제단 터는 웅천 빙고지가 위치한 높이 172m 정도의 소구릉에서 뻗어 내린 능선 말단부와 봉동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사면 말단부가 이어지는 평탄면에 있다. 유적은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유적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일대에서 조선 시대 토기편과 기와편이 채집되었다.
[의례]
진해 여제단 터에서는 무주 귀신과 돌림병으로 죽은 귀신에게 청명·칠월 보름·시월 초하루에 여제를 지냈다고 한다.
[현황]
진해 여제단 터가 있던 곳은 현재 개인 소유의 밭으로 경작되고 있고, 관정동 보호수가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여제는 조선 시대 국가의 지방 조직과 구휼과 같은 대민 정책, 그리고 여역에 대한 공포와 원혼에 대한 연민을 통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향이다. 일반적으로 여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전염병과 재화를 막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