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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97
한자 馬山將軍洞張將軍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장군로 21[장군동4가 22]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송성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마산 장군동 장 장군묘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장군로 21[장군동 4가 22]지도보기
관련 인물 장 장군
봉분 크기/묘역 면적 290㎝[봉분 직경]|99㎡[묘역 면적]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에 있는 고려 시대 장 장군(張將軍)의 묘.

[개설]

장 장군의 생몰 년대에 대해서 알려진 기록은 없으며, 다만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고 오는 인물이다. 『고려사』에는 고려 말 왜구의 빈번한 침략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대규모 침략으로 꼽히는 것은 1372년(공민왕 23) 4월에 왜구가 350척의 배를 이끌고 합포를 침략한 사건이다. 당시 회원현을 수비하고 있던 도순문사(都巡問使) 김횡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왜구와 싸웠으나 군졸 5,000여 명의 희생을 내고 함안으로 후퇴하였다. 그러자 장 장군으로 불리던 사람이 의병(義兵)을 일으켜 남은 관군과 합세하여 싸워 지금의 장군천(將軍川)에서 왜구를 격퇴시키고 전사하였다고 한다.

1970년 4월 20일 이성훈이 장장군 묘비를 세우면서 이곳에 장군과 애마가 같이 묻혔다고 비문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비문에 이름이나 내력은 나타나 있지 않다. 또한 공적에 관해서도 남아 있는 기록이 없으며 다만 구전으로만 전해질 뿐이다.

[위치]

마산 장군동 장 장군묘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장군로 21에 있다. 마산합포구청에서 장군천을 따라 무학산 쪽으로 500m 가량 올라가면 오래된 주택가 가운데에 장 장군묘가 위치해 있는데, 건물이 밀집되기 전에는 마산만을 내려다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변천]

장 장군묘에 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장군의 이야기만 남아 있다. 그러나 1970년 4월 20일 마산 경로회 연합회·마산시청·육군 6558부대가 공동으로 묘역을 정비하고 비를 세우면서 묘역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형태]

장 장군 묘는 99㎡ 규모의 대지에 남향으로 위치하였고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원형 봉분은 직경 290㎝의 크기로 둘레돌을 둘렀으며 쌍분 사이에 비석과 상돌이 위치하고 있다.

상돌의 크기는 105×75×50㎝이다. 비석은 이단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기단 높이 76㎝, 비신 높이 200㎝, 폭 54㎝이다. 묘지 양쪽에는 망주석이 있는데 높이가 165㎝이며, 한쪽 모퉁이에는 파손된 석물 1점이 있다.

[금석문]

비문의 정면에는 ‘장 장군 추모비’라는 명문이 쓰여져 있다. 1970년 4월 20일 마산 경로회 연합회·마산시청·육군 6558부대가 공동으로 비를 세웠으며, 광평군의 후손인 이성훈이 비문을 썼다.

[현황]

1970년 4월 20일 묘비를 세우는 등 장 장군 묘소에 대한 정비 작업을 실시하였다. 현재는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단장되어 있으며 묘지 옆쪽에는 장 장군묘의 설명문이 있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지금도 지역 노인회에서 향사를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 장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문헌 기록이 없으나 의병을 일으켜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창원 지역을 지켜내려 인물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구전되어 왔다는 점에서 창원 지역 향토사의 일부분으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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