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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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龜岩洞國立-民主墓地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성역로 75[구암동 544-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성안 |
조성 시기/일시 | 1968년 - 마산 구암동 국립 3·15 민주 묘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성역로 75[구암동]에 묘역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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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 시기/일시 | 1998년~2003년 - 마산 구암동 국립 3·15 민주 묘지 조성공사 시작|종료 |
준공 시기/일시 | 2003년 3월 - 마산 구암동 국립 3·15 민주 묘지 준공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3월 - 3·15 의거 국가 기념일 제정 |
현 소재지 | 마산 구암동 국립 3.15 민주 묘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성역로 75[구암동 544-1] |
성격 | 국립묘지 |
관련 인물 | 3·15 의거 유공자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에 있는 3·15 의거 때에 희생당한 민주 열사를 위한 국립묘지.
[건립 경위]
국립 3·15 민주 묘지는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 야욕의 수단으로 자행된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나 싸우다가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 의거의 자유·민주·정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조성하였다.
[변천]
국립 3·15 민주 묘지의 최초 묘역은 1968년 경상남도 마산시 구암동 애기봉 야산 3960m²[1200평]에 조성되었다. 1998년 3월에 3·15 성역 공원 조성 공사를 착공하여 2003년 3월 준공하였다. 종전의 3·15 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희생자의 유해를 이장했다. 묘역 위쪽에 유영 봉안소를 지어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3·15 회관 옆 봉안소에 모셔져 있던 영정도 옮겨왔다. 묘역 앞쪽에는 2000년 6월에는 공모를 통해 선정한 상징 조형물인 ‘민주의 탑’과 ‘부조벽’을 세웠다. 2001년 2월 27일 2차 공사를 시작하여 3·15 기념관과 휴게소와 기와지붕으로 된 상징문을 세웠고, 같은 해 12월 27일에는 3·15 기념 시비를 세웠다. 2002년 8월 1일에는 3·15 성역 공원에서 국립 3·15 민주 묘지로 승격되었다. 2002년 9월 11일에 대통령령에 의한 국립묘지 관리소가 설치되었다. 2003년 3월 15일에 국립 3·15 민주 묘지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구성]
국립 3·15 민주 묘지는 대지 12만 8005㎡[3만 8721평]에 묘역, 주요 시설물, 주차 공간, 녹지, 도로 등이 구성되어 있다. 묘역은 4개의 묘역으로 나뉘어져 각 묘역 당 20인의 안장이 가능하며, 현재 34분이 안장되었다.
묘역 위쪽에는 유영 봉안소가 조성되어 있으며, 묘역 앞에는 부조벽이 있고 참배단이 마련되어 있다. 참배단 그 바로 밑에는 상징 조형물로서는 민주의 문, 조각군상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기념시비, 시가 있는 길, 3·15 기념관 등이 설치되어 있다.
3·15 기념관 영상실에서는 3·15 의거의 배경과 과정, 의미 등을 알리는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등을 상영하고 있다. 유영 봉안소는 3·15 의거 희생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어 두고, 3·15 의거 정신을 함양하고 승화 계승시키도록 하고 있다.
3·15 상징 조형물로서는 민주의 문, 조각군상, 부조벽, 기념시비, 시가 있는 길 5종이 설치되어 있다.
[현황]
국립 3·15 민주 묘지는 3월 15일과 4월 11일에서 13일까지 일어난 마산 3·15 의거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묘이다. 마산 3·15 의거는 4·19 혁명으로 이어져 결국 이승만 독재정권이 무너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승만의 하야가 곧 민주주의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독재 정권은 무너진다는 역사적 교훈을 만들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