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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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高山烽燧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현동 산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형곤 |
소재지 | 진해 고산 봉수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현동 산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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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봉수지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현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터.
[변천]
『웅천 읍지』에 의하면 고산 봉수에는 봉수군보(烽燧軍保)는 100명[군 25인, 보 75인]이 있었다. 현동 뒷산인 고산(高山)의 정상에 있었으며, 동쪽의 사화랑산 봉수(沙火郎山烽燧)의 신호를 받아서 북쪽 창원 성황당 봉수(城隍堂烽燧)로 알렸다. 장복산 봉수가 폐지되기 전에는 동쪽 장복산 봉수, 남쪽의 창원 여음포 봉수, 서쪽의 창원 성황당 봉수에 응하였다. 1894년(고종 31) 팔로(八路)의 봉수를 폐지할 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의 서쪽 외곽과 성산구 귀산동과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솟아 있는 고산[400.4m]의 정상부에 위치하며 23×21m의 범위에 해당한다.
[현황]
경상도 방면에서 서울 남산에 이르는 제 2거의 간봉(間烽)이며, 봉수지는 현재 군사 보호 구역내 초소로 활용되고 있어 원래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고산 봉수는 봉수대의 입지처로서 양호한 자연 지리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 곳에 오르면 진해만의 도서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마산합포구 구산면 일대, 성산구 삼귀 지역까지도 보이는 등 가시권역이 대단히 넓다. 그리고 봉수대의 고봉을 끼고 장방형의 고산성이 축조되어 있어 고려와 조선 시대의 관방 유적의 모습과 운영 체계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