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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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龜岩洞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산47-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임동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 마산 구암동 유적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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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5월 29일 - 마산 구암동 유적 경남 발전 연구원 역사 문화 센터에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7월 27일 - 마산 구암동 유적 경남 발전 연구원 역사 문화 센터에서 발굴 조사 종료 |
현 소재지 | 마산 구암동 유적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2동 산47-2 |
성격 | 주거지 유적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2동에 있는 원삼국 시대 주거지 유적.
[개설]
마산 구암동 유적은 1994년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창원시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지표 조사 당시 도로가 신설되면서 드러난 단애면에서 청동기 시대 움집 터가 확인되었으며, 이후 석화 유치원 건립 시 훼손된 구릉의 사면에서도 환호로 추정되는 도랑형 유구의 단면이 확인되었다.
마산시 교육청에서 구암동 유적의 일부 지역에 중앙 초등학교 신축을 계획하자 이에 앞서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본 유적을 시굴 조사하였고, 시굴 조사 결과에 따라 2002년 5월 29일부터 같은 해 7월 27일까지 경남 발전 연구원 역사 문화 센터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대상 면적은 7,900㎡이며, 발굴 조사 결과 원삼국 시대 주거지 4동, 구상 유구 3기와 근대 무덤 1기가 확인되어 이 지역이 원삼국 시대 주거지가 분포하는 취락 유적임이 밝혀졌다.
[위치]
마산 구암동 유적은 행정 구역상 창원시 의창구 반계동 산44-15와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2동 산47-2 일대이다. 지리적으로는 반룡산의 북쪽 사면 산록에 위치한다. 유적의 서쪽으로 마산 시가지가, 북쪽과 동쪽으로 창원 분지가 내려다보이며, 배후는 구릉성 산지로 차단되었다. 마산 구암동 유적은 높이 70m 정도의 능선 돌출부에 조성되어 주변을 조망하기 유리하며 외부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형태]
마산 구암동 유적에서 조사된 주거지는 평면 형태 원형의 움집터이다. 4동의 주거지 중 2호 주거지 1동만 능선에 위치하며 나머지는 모두 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능선에 입지한 2호 주거지는 상부 일부가 결실되었지만 비교적 원상을 잘 유지하고 있다. 반면 사면에 입지한 나머지 3동의 주거지는 상부의 대부분이 결실되었으며 내부에서는 목탄이 다량으로 확인되어 화재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1호 주거지와 3호 주거지는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한 점도 없고 목탄만 잔존한다. 4호 주거지에서는 화재로 불탄 목재 아래에서 다량의 토기 조각이 확인되었다. 1호와 3호 주거지는 사람들이 모두 이동한 후 인위적으로 불을 질러 폐기되었고 4호 주거지는 거주 중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고 추정된다.
구암동 유적의 주거지 내부에서 특별한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몇 개의 기둥구멍이 확인되었으나 일정한 정형성은 찾아 볼 수 없다. 기둥구멍의 깊이는 10㎝ 미만으로 얕은 편이다. 내부에서 화덕 자리 등의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는 점과 불규칙한 기둥구멍의 양상을 감안할 때 장기간 사용한 주거지로 보기는 힘들다. 기왕에 조사된 원삼국 시대의 주거지 내부에서도 특별한 시설은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 시기 주거지의 특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암동 유적에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 자료는 출토되지 않았다. 다만 2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 조각 중 와질의 화로 모양 토기[爐形土器]의 모체 조각과 4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손잡이 달린 술잔만이 조성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2호 주거지 출토 화로 모양 토기는 시간 변화를 잘 반영해 주는 기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둥이의 외반도와 어깨의 돌출도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기준으로 볼 때 3세기 중후반으로 편년할 수 있다. 또한 4호 주거지 출토 손잡이 달린 술잔은 손잡이, 몸체의 제작 기법과 형태 등으로 볼 때 3세기 전반으로 편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유물의 연대를 종합하면 구암동 유적 주거지의 조성 시기는 3세기 전반에서 후반으로 볼 수 있다.
[현황]
구암동 유적 발굴 조사 지역에는 현재 창원 중앙 초등학교가 건립되었으며, 유적을 알릴 수 있는 표지판이나 보호 시설은 마련되지 않았다. 유적의 전체 범위는 발굴 조사 지역뿐만 아니라 구암동 일대를 포괄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