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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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石洞無文土器散布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석동 450-3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양화영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 진해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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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 진해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종료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9월 15일 - 진해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 경남 발전 연구원 역사 문화 센터에서 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9월 30일 - 진해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 경남 발전 연구원 역사 문화 센터에서 시굴 조사 종료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년 - 진해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 경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실시 |
소재지 | 진해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석동 450-3 |
성격 | 유물 산포지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석동 450-3 일대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개설]
진해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는 1998년 창원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진해시 문화 유적 정밀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토기 산포지이다. 지표 조사에서는 청동기 시대 취락지로 추정하였다.
[위치]
진해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는 안민령의 고봉이 남쪽으로 급경사를 이루어 내려오다 120m 지점에서 한번 꺾여 저평하게 내려오는 50m 선의 구릉에 위치한다. 이 지점은 안민 터널의 북동쪽 사면에 해당한다. 유적의 북쪽은 장복산과 불모산이 에워싸고 있고, 삼면으로 석동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0년대 후반 정부 차원에서 문화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호, 관리하기 위해 전국을 대상으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발간하는 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하였다. 이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이 1998년~1999년에 수행한 진해 지역 지표 조사에서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가 확인되었다.
2003년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가 석동 택지 개발 사업 지구에 일부 포함됨에 따라 경남 발전 연구원 역사 문화 센터에서 2003년 9월 15일부터 같은 해 9월 30일까지 이 지역에 대한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2011년 진해시 국도 대체 우회 도로[귀곡-행암] 건설 공사와 관련하여 경남 문화재 연구원이 실시한 문화재 지표 조사에서 유적이 확인되었다.
[형태]
진해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는 안민 터널 개설과 석동 정수장 조성으로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다. 이 유적은 지형적으로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에 입지하였는데 진해 지역에서는 이런 지형 조건이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생활 유적의 공통적으로 선호되었다고 판단된다. 유적의 남쪽 방향 경사면은 주로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지표에 노출된 자연 암괴의 표면에는 성혈이 다수 확인된다.
[출토 유물]
1998년~1999년에 수행한 지표 조사에서 돌도끼를 비롯하여 민무늬토기 바닥 부분, 주둥이 부분 조각 등이 채집되었다.
[현황]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 남서쪽에는 안민 터널이 개설되었고, 북쪽에서는 성산구 귀곡동과 진해구 행암을 연결하는 국도 대체 우회 도로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유적의 북쪽 일대는 임야와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석동 민무늬토기 산포지에는 청동기 시대 취락과 관련된 복합 유적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자은동 청동기 시대 유적, 현동 좁은놋단검[세형동검] 출토지, 영길 민무늬토기 산포지 등과 같이 진해 지역 청동기 시대의 양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