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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7027
한자 金浩鉉
이칭/별칭 홍록(洪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12월 25일연표보기 - 김호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일 - 김호현 삼진 의거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19년 4월 3일연표보기 - 김호현 사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4월 3일 - 김호현 순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8년 - 김호현 대통령 표창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 김호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김호현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묘소 김호현 묘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지도보기8의사지묘(八義士之墓)
기념비 김호현 기념비 - 경상남도 창원시 진북면 지산리 8의사창의탑(八義士彰義塔)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창원시 삼진 의거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호현(金浩鉉)[1893~1919]은 1919년 4월 3일 진동면(鎭東面),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이 연합한 삼진(三鎭) 의거에 참여하였다. 거사 당일 진전면 양촌리 냇가의 둑에 세워진 태극기 아래에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대동 청년단’의 변상태가 대한 독립 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이어 변상섭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모여든 군중의 만세 소리외 함께 일본군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으로 향했다. 진북면 지산리 사동천 다리에 이를 무렵 군중은 7,000여 명에 달했다. 오후 3시, 시위대는 사동천 다릿목에서 마산에서 증파된 헌병 포병 대대와 대치했다.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군중을 이끌고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헌병 포병 대대를 향해 돌진하였다. 이에 일본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난사하여 김호현은 시위 현장에서 순국(殉國)하였다.

[묘소]

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의 ‘8의사지묘(八義士之墓)’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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