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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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卞甲燮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형수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 변갑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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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변갑섭 삼진 의거 참가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변갑섭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8년 - 변갑섭 대통령 표창 수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변갑섭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
묘소 | 변갑섭 묘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8의사지묘(八義士之墓) |
기념비 | 변갑섭 기념비 - 경상남도 창원시 진북면 지산리 8의사창의탑(八義士彰義塔)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창원시 삼진 의거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변갑섭(卞甲燮)[1892~1919]은 1919년 4월 3일 진동면(鎭東面),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의 삼진(三鎭) 대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삼진의거는 3월 28일의 진동면 고현(古懸) 장날 만세 운동 시위 때 잠시 변갑섭, 변상태, 권영대, 권태용 백승인, 황태익 등이 협의하여 진전면 양촌리의 냇가에서 거사를 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4월 3일, 진전면 양촌리 냇가의 둑에 세워둔 태극기 아래에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자 변상태는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이어 변상섭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시위대는 일본군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으로 향하던 중 진북면 지산리 사동천 다리에 이를 무렵 군중은 7,000여 명에 달했다. 오후 3시 무렵 시위대는 사동천 다릿목에서 마산에서 증파된 헌병 포병 대대와 대치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 선 김수동이 일제 강점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군중을 독려하면서 일본군 헌병 포병 대대를 향해 사동천 다리를 질주하자 다급한 일본 헌병이 총을 발사했다. 김수동이 쓰러지자 변갑섭은 김수동의 손에서 태극기를 집어 들고 일본 헌병을 향해 돌진하였고, 일본 헌병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그 자리에서 순국(殉國)하였다.
[묘소]
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 ‘8의사지묘(八義士之墓)’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