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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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卞相福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형수 |
출생 시기/일시 | 1893년 - 변상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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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변상복 삼진 의거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변상복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8년 - 변상복 대통령 표창 수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변상복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변상복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
묘소 | 변상복 묘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8의사지묘(八義士之墓) |
기념비 | 변상복 기념비 - 경상남도 창원시 진북면 지산리 8의사창의탑(八義士彰義塔)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창원시 삼진 의거에 참여하였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변상복(卞相福)[1893~1919]은 1919년 4월 3일 진동면(鎭東面),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의 삼진(三鎭)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삼진 의거는 3월 28일의 진동면 고현(古懸) 장날 만세운동 때 일본 경찰을 피해 잠시 은신했던 변상복, 변상태, 권영대, 권태용, 백승인 등이 계획하고 주도하여 1919년 4월 3일, 진전면 양촌리 냇가의 둑에 세워진 태극기 아래에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들었다. ‘대동 청년단’의 변상태가 군중을 향해 독립 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이어 변상섭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자 모여든 군중의 독립 만세를 부르며 일본군 헌병 주재소가 있는 진동으로 향했다. 진북면 지산리 사동천 다리에 이를 무렵 진동면과 진북면에서 합세한 시위 군중은 무려 7,000여 명에 달하였고 마산에서 증파된 헌병 포병 대대와 대치하였다. 변상복이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군중을 이끌고 일본 헌병들을 향해 돌진하자 다급해진 일본 헌병들은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해 그 자리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묘소]
묘는 창원시 진동면 사동리 ‘8의사지묘(八義士之墓)’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