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이기봉(李基鳳)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7037
한자 李基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연표보기 - 이기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일 - 이기봉(李基鳳) 삼진 의거 참가
몰년 시기/일시 1919년 4월 3일연표보기 - 이기봉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8년 - 이기봉(李基鳳) 대통령 표창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 이기봉(李基鳳)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이기봉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묘소 이기봉 묘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8의사지묘(八義士之墓)지도보기
기념비 이기봉 기념비 - 경상남도 창원시 진북면 지산리 8의사창의탑(八義士彰義塔)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창원시 삼진 의거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기봉(李基鳳)[1883~1919]은 1919년 4월 3일 진동면(鎭東面),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의 삼진(三鎭)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삼진의거는 3월 28일의 진동면 고현(古懸) 장날 만세운동 때 일본 헌병을 피해 잠시 은신하였던 변상태, 권영대, 권태용, 백승인 등이 계획하고 지방 유지인 변갑섭, 변상섭, 김수동, 구수서, 변상술, 김영종, 변우범 등이 거사에 참여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이기봉도 거사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3일,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대동 청년단’의 변상태가 군중을 향해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이어 변상섭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대는 일본군 헌병 주재소가 있는 진동으로 향했다. 진북면 지산리 사동천 다리에 이를 무렵 진동면진북면에서 합세한 시위 군중은 무려 7,000여 명에 달했다. 이기봉은 독립 만세를 부르며 군중을 이끌고 일본 헌병들을 향해 돌진했다. 다급해진 일본 헌병들은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하였고, 이기봉은 그 자리에서 순국(殉國)하였다.

[묘소]

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8의사지묘(八義士之墓)’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