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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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斗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형수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 홍두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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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홍두익 삼진 의거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홍두익 사망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마산 삼진 의거 발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8년 - 홍두익 대통령 표창 수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홍두익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홍두익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
묘소 | 홍두익 묘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8의사지묘(八義士之墓) |
기념비 | 홍두익 기념비 - 경상남도 창원시 진북면 지산리 8의사창의탑(八義士彰義塔)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창원시 삼진 의거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홍두익(洪斗益)[1892~1919]은 1919년 4월 3일 진동면(鎭東面),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의 삼진(三鎭)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삼진 의거는 3월 28일의 진동면 고현(古懸) 장날 만세 운동 때 일본 경찰을 피해 잠시 은신한 변상태, 권영대, 권태용 등이 계획하였다. 이들은 지방 유지들과 협의하여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서 거사를 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4월 3일, 진전면 양촌리 냇가의 둑에 세워진 태극기 아래에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이자 ‘대동 청년단’의 변상태가 독립 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이어 변상섭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시위대는 일본군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으로 향했다. 진북면 지산리 사동천 다리에 이를 무렵 군중은 7,000여 명으로 불어났고 오후 3시경 시위대는 사동천 다릿목에서 마산의 헌병 포병 대대와 대치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군중들을 이끌던 홍두익은 만세를 외치며 일본 헌병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다급해진 일본 헌병들은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고, 그 자리에서 순국(殉國)하였다.
[묘소]
묘는 창원시 진동면 사동리 ‘8의사지묘(八義士之墓)’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