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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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泰璿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형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황동 사항]
권태선(權泰璿)[1891~1962]은 3·1 운동에 참가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조선 국권 회복단’ 단원인 변상태(卞相泰)와 동지 권영조(權寧祚), 권태용(權泰容), 권영대(權寧大), 변상섭(卞相攝), 백승인(白承仁) 등과 함께 4월 3일 진동면(鎭東面), 진전면(鎭田面), 진북면(鎭北面)의 3개 면(面) 연합 시위를 계획하고 고현 장날 만세 운동을 도모하였다. 권태선은 진전면 일암리(日岩里) 성구사(成久祠)에서 태극기를 제작하고, 격문 ‘아왈동포 유진무퇴[我曰同胞 有進無退 : 우리 동포는 나아감은 있으나 물러서지 않는다]’를 판각하여 국권 회복의 의지를 알리는 선전 전단을 등사하였다.
3월 28일 오후 1시경, 권영대가 고현 장터 한복판에 설치된 단상에 올라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모인 600여 명의 군중도 이에 호응하여 만세의 목청을 드높였다. 권태선과 동지들은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격문을 뿌리며 일본군 헌병 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행진하였다. 이에 진동의 헌병 주재소는 마산에 주둔하고 있는 헌병 중포병 대대와 진해 요항부(要港部) 소속 경비 부대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여 시위 진압에 나섰다. 이로 인해 시위대는 오후 5시경 해산되었고, 시위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권태선은 이날 만세시위로 붙잡혀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6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