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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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根道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형수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가덕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동]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근도(金根道)[1900~1983]는 1918년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법랑직공 노동자로 일하면서 일제의 한국 통치와 재일 조선인에 대한 민족 차별 정책에 강한 불만을 가졌다. 김근도는 민족의 해방만이 조국이 번영할 길임을 자각하고 독립 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였다.
1936년 4월 동향(同鄕)의 이수룡(李守龍), 이수강(李壽康), 김성규(金成奎) 등과 규합하여 ‘재 대판 가덕인 친목회(在大阪加德人親睦會)’를 조직하고 일제의 한국 강제점령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김근도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는 재일 조선인의 일치단결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친목회 활동이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자 김근도는 1939년 2월 대판에 거주하고 있던 가덕 청년들을 규합하여 ‘가덕인 청년부회(加德人靑年部會)’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1941년 11월 일경(日警)에 체포되었다. 1942년 9월 30일 대판 지방 재판소(大阪地方裁判所)에서 김근도는 징역 5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해방을 맞아 1945년 10월 8일 형 집행 정지로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