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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7059
한자 文錫柱
이칭/별칭 석주(碩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9년 4월 4일연표보기 - 문석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일 - 문석주 경상남도 창원 웅천면 독립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34년 1월 26일연표보기 - 문석주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 문석주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문석주 출생지 - 경상남도 진해시
학교|수학지 조도전대학(早稻田大學) - 일본 동경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동경 한인 노동조합 연맹 총무

[정의]

일제 강점기 창원시 진해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문석주(文錫柱)[1899~1934]는 1919년 4월 3일에 경남 창원군 웅천면(熊川面) 마천리(馬川里)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거사를 도모하던 중 일경(日警)에 체포되었다. 웅천의 독립 만세 운동은 계광 학교(啓光學校) 교사 주기용(朱基溶)의 제의하고 문석주, 김병화(金炳和), 정운조(鄭雲祚) 등이 참가 의지를 밝히면서 계획되었다. 평소 식민지 통치의 부당성을 깊게 인식하고 있던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와 격문을 만들면서 거사를 착실히 준비하였다. 문석주는 거사를 하루 앞둔 4월 2일 동지들에게 연락을 취하다가 김병화(金炳和), 정운조(鄭雲祚)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에도 거사 계획을 발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4월 3일의 웅천 독립 만세 운동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 일로 1919년 5월 20일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의 혐의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경과에서 수학하며 동경 유학생 회장을 역임하였다. 대학 졸업 후 ‘동경 한인 노동조합 연맹’의 총무를 맡아 재일 한국인 노동자의 권익 옹호에 힘썼다. 1928년 귀국하여 청년 운동을 주도하면서 항일 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1년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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