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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7153
한자 曺啓承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0년연표보기 - 조계승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조계승 경상남도 함안 장날 만세 운동 주도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함안 장날 만세 운동 발발
몰년 시기/일시 1943년 4월 20일연표보기 - 조계승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8년 - 조계승 대통령 표창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 - 조계승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기념비 조계승 기념비 - 경상남도 창원시 진전면 평암리 서암정 내 애국지사서암조선생창의비(愛國志士棲巖曺先生彰義碑)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계승(曺啓承)[1880~1943]은 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 장날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함안 장날의 만세 운동은 조한휘, 한종순, 이찬영, 조병흠, 박건영, 강기수, 한관렬 등이 계획하고 대산면(代山面)의 한문 교사 안지호와 연락하여 3월 19일 함안 장날에 거사를 도모하기로 하였다. 이때 조계승도 이 계획에 적극 찬성하고 3월 19일 봉성동(鳳城洞)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오후 2시, 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경찰 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때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마산 경찰서장 북촌(北村)과 현지 경찰들이 무력을 행사하려 하자 이에 격노한 시위 군중은 주재소를 습격하여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피괴하였다. 또한 시위 군중은 폐쇄한 군청 문을 부수고 들어가 청사 안으로 들어가 군수 민인호를 붙잡아 제복과 모자를 벗기고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였다. 오후 5시, 시위대는 마산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 포병대대와 대치하다 그들의 무자비한 탄압에 해산되고 말았다. 그는 이때 체포되어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8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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