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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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諸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재우 |
출생 시기/일시 | 1552년 - 제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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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제말 의병 활동 참가[임진왜란] |
몰년 시기/일시 | 1593년 - 제말 사망 |
출생지 | 제말 출생지 - 경상남도 고성군 |
활동지 | 제말 활동지 - 경상남도 웅천·김해·의령 |
활동지 | 제말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
묘소 | 제말 묘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옥녀봉 |
성격 | 조선 전기 임진왜란 의병장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총부수문장(摠府守門將)|성주 목사|병조 판서[추증] |
[정의]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가계]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이원(而源)이다. 아버지는 제조겸(諸祖謙)이고, 어머니는 창원 황씨이다.
[활동사항]
제말(諸沫)[1552~1593]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고 총부수문장(摠府守門長)을 역임하였다. 신장이 8척이나 되는 거구이면서도 몸이 날래어 비장군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조카 홍록(弘祿)을 비롯한 67명과 더불어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웅천, 김해, 정암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곽재우와 함께 조정에 알려져 고령, 성주가 중요한 지역이었으므로 성주목사에 임명되어 주둔해 있던 왜군을 격파했다. 이후 성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조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조카 홍록과 함께 제씨 쌍충지(諸氏雙忠趾)를 하사받았다. 시호는 충장이었다가 1812(순조 12)에 받은 충의(忠毅)로 바뀌었다.
[묘소]
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옥녀봉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동 서문 고개의 쌍충비에 기록되어 있다. 옥천 충절사에도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