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292 |
---|---|
한자 | 金字中 |
이칭/별칭 | 회여(晦余),송죽헌(松竹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용 |
출생 시기/일시 | 1702년 - 김자중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780년 - 김자중 사망 |
묘소|단소 | 김자중 묘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 쌍교등(雙轎嶝)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광산(光山) |
대표 관직|경력 | 수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壽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
[정의]
조선 후기 진해현[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회여(晦余), 호는 송죽헌(松竹軒)이다. 김광필(金光필:糸+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만구(金萬九)이고 아버지는 김두형(金斗衡)이며, 어머니는 함안 조씨로 조랭(趙冷)[어계(漁溪)의 후손]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자중(金字中)[1702~1780]은 기개(氣槪)가 있어서 사림들과 함께 상소를 올려 우암과 동춘당을 승무(陞廡)할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타고난 그릇이 영특하고 빼어났으며 문장이 넓고 해박하였고 초야에 묻혀 산림 속에서 고고하게 살았다 한다. 한결같은 정성으로 조상을 받들어서 마침내 그 공을 이루어 합천 이남의 선비들이 칭송하였다 한다.
[묘소]
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 쌍교등(雙轎嶝)에 있다.
[상훈과 추모]
『진해현 읍지』에서 영조 때에 수직(壽職)을 차례로 받았다고 하며, 『광산 김씨 양간공파보』에는 수직으로 부호군(副護軍)에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