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8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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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鍾信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윤종수 |
[정의]
창원시 마산 출신의 기업가.
[개설]
일제 강점기 젊은 시절 진보적 민족주의자로서 활동하였으나, 해방 이후 좌우합작 활동을 하다 미군정에 의해 발탁된 이후 보수 정치가, 언론인, 기업인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각 방면의 다양한 활동은 8·15 해방 이후 마산을 대표하는 지역의 유지의 삶의 전형을 보여준다.
[활동 사항]
김종신(金鍾信)[1904~1978]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면서 당대 대부분의 젊은 지식인이 그러했듯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아 활동하였다. 좌우합작 비타협 민족주의 단체인 신간회에 참여, 신간회 해체 이후 해방 전까지 마산에서 기업을 경영하였고, 해방 이후 여운형 주도의 건국 준비 위원회에 참여하였으나 1945년 10월 미군정 일본인 재산[적산] 관리소장 임명, 동양 주정 공장 관리인이 되면서 우익 진영에서 활동했다.
1946년 5월 남선 신문[현(現) 경남 신문] 초대 사장, 마산 상공 회의소 회두를 거쳐 1949년 마산 약주, 동양 주류, 소화 주류 사장을 지냈다. 1952년 자유당 마산 시당 초대 위원장, 초대 마산 시의원, 민선 시장[간선], 1954년 제 3대 국회 의원 당선, 1958년 10월 자유당 마산 시당 위원장[국회의원 낙선]에 취임, 1960년 2월 자유당 마산 시당 상임 고문, 3·15 의거 이후의 마산 민심 수습대 5명 중 1명으로 참여했으나 민주당의 반발을 샀다.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창당한 민주 공화당에 참여, 중앙 상임 위원이 되었다. 1969년 경남 신문과 경남 방송 사장에 취임하였다. 1972년 마산 문화 TV방송 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