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9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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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德庵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서7길 46[추산동 산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범홍 |
건립 시기/일시 | 1933년 - 성덕암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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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성덕암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서7길 46[추산동 산 1] |
성격 | 사찰 |
창건자 | 관음행 |
전화 | 055-246-4259 |
[정의]
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소속 사.
[건립 경위 및 변천]
성덕암 자리는 오래 전부터 마을을 수호하고 주민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산신을 모시던 사당이 있어 환주산(環珠山) 지역 주민들이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민간 신앙이 불교와 결합하여 사찰이 된 것이 지금의 성덕암이다. 성덕암 경내의 응애 나무라 불리는 거대한 고목 밑에 있는 산제당은 약 200~300년 전쯤에 생겨나 산신제를 지내던 곳으로 추정된다. 산신을 모신 산령각(山靈閣)은 창건 당시 새로이 조성하여 바로 인근에 있다.
오래 전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나 근거를 확인할 수는 없고, 근대에 들어서서는 한국 불교의 선각자이자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백용성(白龍城)[1864~1940] 대종사의 발원으로 관음행 보살이 1933년경에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 관음행 보살은 산제당이던 이곳에 사찰의 건립을 추진하다가 가뭄에는 땅에 손대면 안 된다는 속신을 어겨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지금의 보광전, 칠성각, 산령각, 요사채 등 주요 전각들은 모두 창건 당시 세워진 것이라 한다.
성덕암은 창건된 후로 다녀간 승려들의 입을 통해 유명세를 타서 성철(性徹)[1912~1993]도 머물렀다고 한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성덕암의 가람 구성은 금당인 보광전을 중심으로 칠성각, 산령각, 용왕단, 일주문, 요사 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주문 격인 2층 누각인 종루, 맞은편에 본전인 보광전, 마당을 중심으로 동서 양방향에 승방과 요사, 공양간 등이 있다. 보광전 앞의 석탑과 석등은 근대에 조성한 것이다. 보광전 후면에 칠성각이 있고 그 왼편에 산령각 산제당, 그 아래로 용왕각이 있다. 그 외에 오래된 포구 나무, 응애 나무 등이 있으며 보광전과 승방 사이 너럭바위 위에 창건주 관음행과 그 시어머니인 비구니 김소악과 관음행의 딸 곽복남 보살의 부도탑이 있다.
2013년 현재 주지는 승려 가영이며, 신도 수는 약 600여 명이고 지역 불교 학생회 활동의 중심지가 되어 있다. 성덕암은 전통 사찰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