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0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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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神祭 |
이칭/별칭 | 별신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정헌 |
성격 | 제례|별신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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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시기 | 음력 3월의 길일|1984년부터는 10월의 길일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성신(星神)을 위해 지내는 제의.
[개설]
성신제는 토속 신앙 형태로 우리나라 남쪽 해안 지방의 여러 포구에서 행해지는 별신제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별신제는 일명 ‘별신굿’이라고도 하는데 남해안 일대에서 행해지는 별신제는 3년에 한번 씩 지내는 3년제와 10년에 지내는 10년제가 일반적이다.
[기원]
경상남도 마산 지역 성신제의 기원은 그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마산 지역은 상고 시대부터 고깃배들의 출입이 있었고, 특히 조선 시대 중기에는 우리나라에서 동해의 원산, 서해의 강경과 더불어 3대 수산물 집산지의 하나로 손꼽혔으므로 성신의 기원은 아마도 3~4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유래]
마산포에 사는 어민이나 고기 장수, 객주들은 한결같이 고기잡이 나갔던 배들이 풍랑이나 사고를 만나지 않고 무사히 만선으로 들어오기만을 기원하였다. 더욱이 마산포는 물길이 험해서 거제에서 마산포까지 오는데 아흔 아홉 구비를 거슬러 와야 한다. 나침반이나 등대가 없었기에 방향을 잡기 위해 믿을 것이라고는 북극성뿐이었다. 따라서 소박한 서민들은 오직 별에 의지하여 풍어와 배들의 무사 귀항을 비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
[제의 방법과 순서]
마산포에서는 해마다 기제(紀祭)를, 5년마다 중제(中祭)를, 10년마다 대제(大祭)를 지내왔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별신제를 3년과 10년 만에 지내는 것과 비교할 때 다소 차이는 있으나 이것은 재정적인 문제와 관계되고 있는 것 같다.
별신제는 보통 음력 3월의 길일을 택해서 지냈다. 젯날에는 성신 사당에 제물을 차려 놓고 성신기를 세우고 마을 대표가 헌관(獻官)이 되어 무당, 어민, 선창 고기장수 등 일반 서민, 선창 걸립패(乞粒牌)들이 둘러서서 제를 지낸다.
헌관인 마을대표가 향을 사르고 촛불을 밝히고 잔을 올리고 재배한 다음 성신 고천문(星神告天文)을 읽는다. 축문을 읽고 다시 재배할 때 뒤에 서 있는 모두도 함께 절한다.
이어 무당들이 성신을 향해 재배하고 굿을 시작한다. 무당들이 굿을 할 동안 걸립패들은 낮은 소리로 풍물을 치며 화합한다. 소제 종이에 불을 붙여 소제를 올리면서 굿이 끝난다. 굿이 끝나면 걸립패들이 한바탕 논 다음 마을을 돌면서 풍악을 치고 걸립놀이를 한다.
헌관과 집사의 복장은 옛날에는 깨끗한 일상복이었으나 1920년대에 마산포의 유지들이 어업에 관계하면서 유건과 도포 차림으로 바뀌고 제의 의식에도 유교풍이 가미되었다.
송석하의 『한국 민속고』[동국 문화사, 1960]에 의하면 별신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별신대를 세우는 것인데 합포[마산]의 경우 10년 대제 때 대제가 끝나면 다음 대제 때에 사용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정성스레 길러 10년 만에 일정한 의식을 거쳐 나무를 잘라 별신대를 만들었다고 하며 합포에 새로 만든 별신의 위패에는 성신이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
[현황]
마산 지역의 성신 사당은 일제 말까지 지금의 구마산 어시장 입구 길가에 있었는데, 여기서 대제를 지낼 때에는 시내 관공서의 기관장이나 유지들이 초청되었고 구경꾼도 수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그 후 도로 확장 사업 등으로 성신의 위패는 두 번이나 옮겨져 지금은 어시장 입구 영남 식당의 3층 옥상에 모셔져 있는데, 어시장 중매인인 전삼도(田三道)가 맡아 해마다 기제나 추석 명절제 등을 지냈다. 1984년부터 마산시 수협과 마산 문화원이 공동으로 해마다 10월의 길일을 택해 수협 공판장에서 성신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