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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동 두동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0067
한자 熊東頭洞堂山祭
이칭/별칭 두동 마을 당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우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두동 할머니집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 두동 마을
성격 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매년 정월 대보름
신당/신체 신목
신당/신체 제단 : 가로 67㎝|세로 40㎝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 두동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개설]

웅동 두동 당산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주신인 당산 할매에게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공동으로 지내는 제의이다.

[연원 및 변천]

예전의 웅동 두동 당산제는 상당히 큰 규모의 마을 공동 제의였다고 한다. 마을에서 공동 기금을 마련하여 용원으로 넘어가는 분당 고개에 있던 서낭당에서 당제를 지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던 것이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를 내고 8·15 광복 이후 도로를 넓히면서 서낭당은 완전히 없어지고, 지금은 돌로 제단을 만들어 그 맥을 잇고 있다.

한동안 마을에서 공동 기금을 마련하여 굿하는 사람을 모셔다 당제를 지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단한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마을이 편안하지 않자 할머니 한 분이 다시 동제를 지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제의를 주관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집에서 계속 당제를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서낭당은 소실되었으며 제단과 신목이 있다. 공지곡 마을 옆 독메[외따로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산]에 돌로 만든 제단이 있다.

[절차]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뜻 있는 주민들이 성의껏 낸 성금으로 제수를 마련한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일반 기제사의 형식을 따르나 간소화되었다.

[현황]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로를 넓히면서 분당 고개에 있던 서낭당은 없어졌다. 2013년 현재는 공지곡 마을 옆 독메에 가로 67㎝, 세로 40㎝ 정도 되는 돌로 만든 제단이 남아 있을 뿐이다. 웅동 두동 당산제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큰 제의였지만, 지금은 마을신이 안주하던 원래의 공간을 잃어버린 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겨우 그 명맥만 잇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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