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0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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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熊川洞水島堂山祭 |
이칭/별칭 | 수도 마을 당산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수도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우선 |
의례 장소 | 당집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수도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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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섣달 그믐날 |
신당/신체 | 당집|소나무[신목]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수도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개설]
웅천동 수도 당산제는 매년 섣달그믐날에 마을을 지켜주는 주신인 당신(堂神) 할매에게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공동으로 지내는 제의이다.
[연원 및 변천]
약 400여 년 전 김해 김씨 일족이 이곳[이섬]에 들어와서 정착한 후 동래 정씨, 김해 허씨 등이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천재지변과 왜구들의 노략질을 피하고, 출어한 어부의 무사함과 풍어를 빌고, 질병 등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염원으로 당산을 지정하고 제를 올린 것이 웅천동 수도 당산제의 시작이었다.
본래 당산에는 나무가 없었으나 당산이 노출되어 위엄과 존엄성이 없다 하여 100여년 전 정성범이라는 마을 주민이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지금은 울창한 소나무가 당산을 감싸고 있다. 당집은 1948년경에 지었다고 전하는데, 노후하여 1990년에 마을 사람들의 추렴으로 다시 지었다. 지붕에 청기와를 얹고 벽에 붉은 벽돌을 썼으며, 드나드는 길목을 포장하고 벽돌담을 쌓았다.
3년마다 행하는 당산제는 굿이 3~4일 계속되는데 먼저 당산에서 당산신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고 연이어 마을 뒤 바닷가에서 3일간의 굿이 성대하게 거행된다.
[신당/신체의 형태]
웅천동 수도 당산제의 당집은 마을 당산에 자리한 산지당이다. 사당 안에는 ‘당산성왕대신’이라고 쓰인 위패와 당산 할매의 의복이 모셔져 있다.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신체는 당산을 감싸고 있는 신목(神木)들이다.
[절차]
웅천동 수도 당산제는 매년 섣달그믐날에 행해지는 데 마을에 길흉사가 있을 때는 다른 길일을 택하여 지내기도 한다. 제의는 섣달그믐날 저녁에 지내는 데 이 날은 마을 사람 모두가 정숙하게 보낸다. 제일이 다가오면 마을회의 때 제관을 선정한다. 자격은 30대 이상의 정부부(正剖符)로 자녀가 있고 화목한 가정이어야 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흉사에 참여할 수 없고 자택에 금줄을 치고 외인의 출입을 금하였다. 노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인사하지 않으며, 일주일간 목욕재계하고 매사에 몸조심을 한다. 만일 금기 사항을 지키지 않을 때는 마을에 불행한 일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제관 부부에게는 당제를 지낸 후 1년간 마을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제의 경비는 마을 주민이 추렴하여 마련하고, 제수는 제관이 바깥[섬 밖]에서 준비해 온다. 제물을 진설할 제기는 당집에 따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사용한다. 제의 때 쓸 물은 동리 가운데 있는 ‘큰새미’ 우물을 사용하는데 정화해서 제의가 끝날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쓰지 않는다.
[현황]
2013년 현재 모든 제례가 간소화되어 3년마다 올리던 큰굿 대신 해마다 소규모의 굿을 하며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제관의 선정 또한 금기 사항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스님이나 무속인에게 의뢰하여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제의에는 통장과 희망자가 참례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