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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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방아 노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
집필자 | 노성미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동요.
[개설]
「방앗간 노래」는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동요이다. 방아 찧기는 여성 노동에 속한다. 그러면서 집단적인 노동이 아니라 개인 노동이므로 여성의 개인적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구연 상황이다. 방아는 식생활과 관련되기 때문에 길쌈 노동과 같이 여성의 생활과 관련된 정서가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채록/수집 상황]
구 마산시청에서 1982년에 발행한 『내고장 전통』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와 장소, 채록자, 구연자 등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구성 및 형식]
3가보격 형식이다. 먼저 방아를 찧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어서 방아 찧는 일을 끝내고 나들이 갈 상상을 한다. 그러면서 시집살이 할 때 시어머니를 미워하던 감정을 추억하며 지금은 없는 시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내용]
꽁달콩 꽁달콩 찧는 방아/ 제나 찧고서 모실[마슬]갈까/ 시어미 죽었다고 춤추었더니/ 보리방아 물줄 때 생각나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옛날 가정의 일상생활이 하루 세끼 식생활 중에서도 주부들 고통의 하나는 쌀과 보리를 찧는 일이었다. 절구통이 가정마다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웃집이 아니면 삯 방앗간을 이용해야 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쇠 방앗간이 있었는데, 방아의 윗돌은 미끄럽고 대석(臺石)은 거친 요철[凹凸]형으로 깎아놓은 위에다가 보리 또는 벼를 갈아놓고 원형의 절구 둘레를 소가 돌아가면서 찧게 되어 있었다.
또 마산합포구 남성동 천주교회 근처에 디딜방아가 있었는데, 중후한 목조로서 절굿대는 Y자형이며 천장에 달린 두 개의 줄을 잡고 두 사람이 밟도록 되어 있었다. 마산합포구 완월동에도 물레방아가 있었다.
1912~1913년경부터 일본인이 처음으로 전기 모터로 정미소를 만들었는데, 이때 우리나라 여자 아이들을 선미공(選米工)으로 두었다. 마산합포구의 신마산과 구마산에 각각 일본인과 중국인이 경영하는 정미소가 들어섰다. 그 뒤로 대규모의 도정 공장이 들어서고 방앗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사라졌다.
[현황]
현재는 방앗간도 정미소도 사라지고 이 노래도 옛 기록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의의와 평가]
시집온 젊은 며느리가 방아 찧기에 지쳐서 시어미의 넋두리를 하던 사설은 이제 방아의 소멸도 먼 옛날이야기인 것처럼 노래도 전설처럼 옛 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