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0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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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驪州李氏-孝行 |
이칭/별칭 | 삼계리 효열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경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 「삼계리 효열비」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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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효열비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 |
성격 | 구비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여주 이씨 부인|김병완 |
모티프 유형 | 효열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 마을 입구 삼계 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효열비(孝烈碑) 속 여주 이씨의 효열담.
[채록/수집 상황]
『감동으로 적신 효성』[마산 문화원, 1998]에 「삼계리 효열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 마을 입구 삼계 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이 효열비(孝烈碑)는 이 마을에 살던 김해 김씨 병완 일명 필용의 처 여주 이씨 부인의 효열을 기록한 비(碑)이다.
부인은 이정구의 따님으로 어릴 때부터 성품이 온순 강직하고 언행이 현숙하여 삼강행실지도(三綱行實之道)를 부모님으로부터 닦았다. 18세에 김병완과 혼인하였으나 가세가 궁색하고 생계가 어려운 가운데 시조모와 시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다. 딸 셋을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한 죄로 남편의 외도를 겪는 동안 시조모와 시부모님의 환후 수년 동안 지성으로 간호하였으나 돌아가시니 치상예절이 흐트러짐이 없이 행하였다.
탈상 후 병환으로 환고한 남편을 맞이하여 4년 간 지극정성으로 쾌유를 빌었으나 백약이 무효하고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당하여 애통함을 겪으면서 상중 또한 타의 모범이 되므로 마을 사람들이 부인의 효열을 더욱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런 연유로 향리의 추천으로 여러 기관의 표창을 수령하고 특히 성균관장의 효부표창을 계기로 문중계족이 뜻을 모아 부인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우고 후세에 전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여주 이씨의 효행」은 어려운 살림에도 시조모, 시부모와 남편의 병구완을 지성으로 하였으며 죽은 뒤에도 상제예절이 흐트러짐이 없었다는 내용으로 부덕의 도를 몸소 실천한 ‘효행담’이 주요 모티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