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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 송씨의 순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1089
한자 恩津宋氏-殉節
이칭/별칭 석전 1동 정려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석전 1동 정려비」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관련 지명 정려비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 1동 지도보기
성격 구비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송씨 부인|정봉락
모티프 유형 순절(殉節)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 1동의 정려비에 나타난 은진 송씨의 순절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감동으로 적신 효성』[마산 문화원, 1998]에 「석전 1동 정려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사무소 앞에 서 있는 이 비석은 정봉락의 처 은진 송씨의 절령을 나라에서 표창한 정려비이다.

정봉락과 결혼한 송씨는 재행(再行)와서 우연히 남편이 병을 얻어 며칠 고생하다가 귀가한 4일 만에 죽었다는 부고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는다. 모든 장례절차를 마친 뒤 자기 침방에 들어간 후 목숨을 끊으니 이때가 결혼한 지 7개월 나이 19세였다. 130년 후인 1905년 이 사실이 나라에 알려져 비로소 정려를 내리게 된 것이다. 정열부 송씨 정려비(鄭烈婦宋氏旌閭碑)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정조 때에 창원에 정열부 송씨(鄭烈婦宋氏)가 있었는데 지아비를 따라 순절하니 도내 사림(士林)이 그 의를 추모하여 관아에 장계를 올리기를 오랫동안 계속하였다. 송씨는 본이 은진(恩津)이고 쌍청당유(雙淸堂愉)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원진(元珍)이요, 어머니는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다. 열부가 처녀 시절에 효성과 순함으로 알려졌고 시집가서는 정봉락(鄭鳳洛)의 처가 되었다.

정씨는 진주인으로 충장공(忠莊公) 분(苯)의 후손이다. 겨우 초례(醮禮)하여 재행(再行)에 이르러 봉락(鳳洛)이 질병을 만나 실리어 되돌아가니 열부가 따라서 가고자 하였는데 친정에서 병이 심하지 않고 신행(新行)에 또 기약이 있다 하여 억지로 만류하였다. 수일 동안 있다가 마침내 죽음으로 소식을 듣고 열부가 곧 달려가 대성통곡을 하였다. 조금 지나서 몸소 소렴(小殮)과 내빈을 살피고 순한 말로 시부모를 위로하였으며 직접 부엌에 들어가 시부모께 진상하고 궤연(几筵)에 음식을 올리기를 다 한결같이 하였다. 일찍이 크게 슬픈 모양을 얼굴과 말씨에 드러내지 아니하니 시부노가 자못 안심하였고 장례에 이르러서는 또 몸소 제전(祭奠)을 구비하고 거동을 자연스레 하였다.

장례를 마치고 가족들에게 이르기를 “제가 오랫동안 수고로워 정신이 피곤하니 잠을 좀 잘까 합니다.” 하고 방에 들어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으니 이를 괴이하게 여겨 살펴보니 이미 자리를 바로하고 눈을 감았으니 구제할 수가 없었다. 이때가 갑인년(甲寅年인 1794년) 9월 이었으니 초례(醮禮)한 지 7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모티프 분석]

「은진 송씨의 순절」 이야기의 모티프는 초례를 지내고 재행(再行)을 오게 된 남편 정봉락이 병을 얻어 되돌아간 지 4일 만에 결국 사망하자 송씨 부인 역시 남편의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치고는 남편의 뒤를 이어 결혼한 지 7개월 방년 19세의 나이로 순절한 송씨 부인의 ‘순절담(殉節談)’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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