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155 |
---|---|
한자 | 遺言-明堂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정헌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전승되는 전설.
[채록/수집 상황]
『진해 스토리』[진해시, 2008]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진해에 주(朱)씨 성을 가진 땜장이가 있었다. 이 땜장이는 일거리를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녔는데, 마을을 갈 때는 언제나 아내와 같이 다녔다. 마을에 들면 아내는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솥 때우러 오이소. 솥 때우러 오이소” 하며 외쳤다. 그렇게 다니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때로는 목이 쉬기도 하였다.
남편은 그런 고된 일을 맡아 하는 아내에게 솥을 이고 걷는 수고라도 덜어 주려고 다른 마을로 옮겨갈 때는 지게에 짊어지고 다녔다. 그런 정경을 보는 마을 사람들은 천생연분이라고들 하였다.
그런 중에도 아들이 태어나자 이번에는 어린 아들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녀야 하였다. 남편은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고 아내는 아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며 도리어 남편을 위로하였다.
그럭저럭 아들이 장성하여 혼인을 했고, 주씨는 늘그막에 들어서 아들을 데리고 지금의 천자봉으로 올라갔다. 그는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내가 죽거들랑 여기에 묻어다오.” 라고 이르고 그 지점을 잘 보아 두라고 당부를 하였다. 그런 뒤에 얼마 안 가서 주씨는 세상을 떠났고, 잘 사는 집안처럼 장례를 치를 수 없게 된 아들은 아버지의 관을 지고, 며느리는 괭이와 삽을 들고 그 지점으로 올라갔다.
괭이와 삽으로 굳은 땅을 파기는 쉽지 않아 내외가 쉬지 않고 땀 흘려 괭이질을 하고서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를 무렵에야 겨우 관을 묻을만한 구덩이가 완성되었다. 이들 내외는 하관을 하여 봉분을 하고 봉분제를 올렸다. 재배를 하고 일어서서 잠시 묵상을 한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마주 보았다. 유언대로 부친을 안장하고 한 시름 놓은 그들의 눈길은 어떤 영검에 사로잡힌 정염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때와 장소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그만 깊은 정을 나누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이 뒤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유언이 명당」 이야기는 진해 지역에 전승되는 명태조(明太祖) 주원장 설화 중 하나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명당과 영웅의 탄생담(誕生談)이 주요 모티프이다. 부부애가 좋은 가난한 땜장이 부부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땜장이가 죽으면서 아들부부에게 한 곳을 가리키며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이곳에 묻어달라고 한다. 아들 부부가 점지 해 둔 장소에 부친을 매장하고는 그곳에서 부부 관계를 맺는다. 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다름 아닌 중국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