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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얼을 되살려 실천하는 모임, 수성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B020204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상현

오늘의 상산김씨 문중을 움직이는 조직은 수성회이다. 정식 명칭은 ‘상산김씨종중수성회(商山金氏宗中守城會)’라 한다. ‘수성(守城)’이라는 말이 얼핏 생소하게 들려 어리석은 질문을 드려 보았더니, 회장을 맡고 있는 김근희 씨가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답을 주신다. 일찍이 동산 김명윤 선생이 전란 중에 여러 고을의 목사를 역임하면서 한 번도 적에게 성(城)을 내놓지 않았는데, 그 불패전의 신화를 담은 뜻이라 한다.

수성회에서 맡고 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동산공의 제사를 지내는 일이다. 석산마을 입향조이자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는 동산 선생에 대한 의례가 첫째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선생을 기리는 제례가 일 년에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산공의 제사는 기제사(할아버지는 섣달 스무사흗날, 할머니는 동짓달 초닷샛날) 외에도 설·추석 명절 제사, 추원재(追遠齋)에서 지내는 시제(時祭), 음력 3월 13일 충현사에서 지내는 향사 등이 있다. 과거에는 여기에다 동지 차사까지 지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제사는 충현사에서 지내는 향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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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공 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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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공 향례

수성회가 결성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 것은 30여 년 전의 일이다. 규약(規約)을 찾아보니 ‘1975년 4월 6일부터 시행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2008년인 올해는 34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성회는 본부를 석산마을 도봉서원에 두고, 매년 여기서 연례 총회를 연다. 연락사무소는 부산광역시와 서울특별시에 있다. 수성회가 어떤 일을 맡아 왔는지는 규약의 제3조 ‘수성회의 목적’을 보면 잘 나타난다.

1. 멸사봉공(滅私奉公)·살신성인(殺身成仁)의 숭고한 조상의 얼을 추앙, 고취하여 이를 씨족의 정신적 바탕으로 삼아 씨족의 번영을 도모하고, 나아가서 사회정의 구현에 진력한다.

2. 씨족 상호간의 우애와 친선을 돈독히 하여 상호 부조와 상호 존중의 미풍양속을 계승한다.

3. 단결된 힘과 슬기로써 종중의 제반사를 원만히 해결하며 국가와 민족에 이바지한다.

4. 문중의 인재 양성의 바탕이 된다.

이것을 줄인다면, 조상을 잘 받들고 종인들이 화목하며 자손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수성회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여 왔는데, 규칙에는 다섯 가지의 세목이 제시되어 있다. 곧, 조상을 위한 각종 사업, 종중 재산의 합리적 관리, 씨족을 위한 문화 및 교육사업, 장학금 제도 및 유공, 모범 씨족의 표창제도 설치, 사회사업 및 타성과의 유대 강화 등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철저한 활동 계획이다. 그래서일까? 석산마을에서는 정말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박사·교수들이 많이 나왔는데, 여기에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전국적인 인사들이 많다. 최근 『동읍신문』(제23호, 2008년 2월 19일)이 특집으로 조사하여 실은 기사를 보니 제목부터가 ‘박사(博士)마을 석산(石山)을 찾아서’이다.

수성회가 결성되고 첫 번째로 이룬 일이 『동산선생실기』를 번역하여 출간한 것이었다. 실기는 1866년경 처음으로 간행되었지만, 한문으로 되어 있어 세간에는 문집이 간행되었는지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초대 회장을 지낸 김기수(金基守) 씨의 서문이 인상적인데, 동산공은 흔히 전기에서 볼 수 있는 신격화된 인물이 아니라, 후손들과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에 호흡과 희로애락의 감정이 우리와 똑같았습니다. 다만 총명하고 조숙한 유년 시절로부터 45세로 일찍 하세하실 때까지 충효의 이상을 교과서에 있는 그대로 추호의 어김없이 자연스럽게 실천하신 것뿐입니다. 진리는 항상 우리의 손닿는 데 있으며, 뛰어난 인간도 평범한 우리 가운데서 탄생하여야 합니다.”

『동산선생실기』는 한참 뒤인 2002년에 증보되어 새롭게 출간되었다. 마침 종손 김홍균(金洪均) 씨가 여러 자료를 잘 보관하고 있어 증보판을 출간하는 데 주요 자원이 되었다. 이는 수성회가 그동안 얼마만큼 열성적으로 조상의 얼을 되살려 실천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이를 통하여 후손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가르치고 있는지도 시사해 주고 있다.

[정보제공자]

김근희(남, 1935년생, 창원시 동읍 금산리 거주, 상산김씨종중수성회 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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